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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9장 전민변정도감과 민생개혁(2)

by 남전 南田 2023. 9. 15.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9장 전민변정도감과 민생개혁(2)

* 백성의 환호와 세족의 반발

 

신돈은 격일로 도감에 출근해 쟁송 처결을 했다. 이인임과 이춘부 등 처결 실무를 맡은 관리들은 천민들의 소송을 직접 듣고 판결했다.

벼슬아치나 명문 거족들은 전전긍긍하며 자진해서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스스로 고치려는 자보다 숨기고 버티어보자는 가문도 많았다. 그러니 토지를 돌려받지 못한 원 지주나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이 주인이 포고령을 무시하며 모르는 척하자 고발장이나 소장을 들고 전민변정도감으로 찾아와 호소하였다.

<고려사> <신돈전>에는 변정도감의 처결이 백성들에게는 환영을 받아 온 나라가 기뻐했다.“고 진실에 가까운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 令出, 權豪多以所奪田民還其主, 中外忻然.

― 명령이 발표되자 권세가와 부호들 가운데 점탈했던 전민(田民)을 그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자가 많았으므로 온 나라가 기뻐했다.

 

고발장을 들고 밀고 드는 사람들의 송사에 이인임과 이춘부, 임박은 그들의 호소를 청취하고 처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간혹 권문 세족의 호소도 들어왔다. 전연 사실이 아닌데도 천민이나 노비가 거짓 주장을 하면서 땅을 차지하려거나 노비 신세를 면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러 번의 전쟁 때나 마을이 불타고 큰 홍수가 나면 그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던 땅이나 노비 문서가 불에 타거나 침수되어 훼손된 일이 많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노비들 중 좀 깨어있던 자들이 개경과 인근을 돌아다니며 소문을 퍼뜨렸다.

도감에서 주인집에 종 문서가 없는 자는 모두 방면하여 양민으로 만들어 준다네.”

불에 타고 물에 잠겨 근거가 될 문서가 없어진 사람들은 송사하면 반드시 성인께서 다 들어 주신다오!”

정말 성인이 나셨네.”

소문을 듣고 변정도감에 노비들이 소장을 들고 몰려 왔다. 신돈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방면하였다. 주인이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노비 문서를 내놓지 못하니 꼼짝없이 도감의 판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려사> 신돈전에는 이 사실을 왜곡해 기록해 놨다.

― 旽外假公義, 欲市恩於人……奴隷背主者, 蜂起曰, “聖人出矣!”

- 신돈이 겉으로 공의(公義)를 가장하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푼답시고 천예(賤隸)로서 양민이라고 호소하는 자는 모두 양민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되자 주인을 배반한 노예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성인이 나왔다!”고 떠들었다.

오래 묵은 폐습들을 혁신하려는 생각을 가진 왕은 변정도감의 쟁송 처결에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송사하는 부인이 얼굴이 예쁘면 신돈이 겉으로 불쌍히 여기는 체하며 꾀어서 그 집에 오게 하고는 번번이 간음하였다.”고 기록해 신돈의 개혁 추진을 평가절하했다. 아마 전민추정도감의 판결로 민심을 크게 얻자 엉뚱한 일을 부풀리고 핑계 삼아 깎아내린 듯하다.

신돈은 틈틈이 그가 세운 여러 곳의 암자에 나가서 예불을 드리곤 했다. 관음암이나 반야암에 나가면 부녀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비단옷을 입은 사대부 부인네들이 몰려다니자 소문은 더욱 나쁜 쪽으로만 났다.

<고려사><고려사절요>에는 지엽적인 일을 침소봉대해 변정도감의 업적을 훼손하거나 심하게 왜곡 모함하고 있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진실인 양 포장하고 왜곡해 부녀자들을 간음하고 쟁송을 해결해 주었다는 것이다.

용모가 아름다운 아낙네가 소송해 오면 신돈은 불쌍히 여기는 양 가장하고 자기 집으로 꾀어다가 간음했으며 송사에서 반드시 뜻을 이루게 해 주었다. 이 때문에 여자들의 청탁이 성행했고 사람들이 분노로 이를 갈았다.

 

예쁘고 아름다운 미인이 찾아오면 미혹해서 간음했다고 비방했는데 그 당시 신돈은 아직 집도 없고 일정한 거처도 없었다. 고아와 유랑자를 위한 암자에 지냈는데 어찌 닥치는 대로 여인을 농간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처럼 모텔이나 호텔, 마음대로 드나들 유흥업소도 없었던 시절에…….

<고려사>의 공의를 빙자하고 환심을 사고자 처결했다는 기록은 정말 믿을 게 못 된다.

 

문과 급제한 간관인 우정언 이존오가 이때 사관으로 있었는데 신돈을 아주 비난하는 상소를 좌사의 정추와 함께 왕에게 올렸다.

그들은 궁에서 열린 문수회 때나 정사를 처리할 때 신돈이 왕을 무시하며 무례하다고 둘은 번갈아 가며 왕에게 진언했다.

상감마마! 신하인 신돈이 방자하게도 전하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 문수회를 참관하니 이는 국정을 문란케 하고 임금이 없는 듯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신돈은 궁에 들어올 때면 말을 타고 홍문을 출입하니 이 또한 무례한 일입니다.”

젊은 이존오의 진언에 공민왕이 노했다.

이 무슨 모함이고 망발이냐? 과인이 이미 첨의에게 허락하기를 나와 같은 자리에 앉아 정사를 논의하자고 했다. 이는 곧 왕명을 무시하는 소리가 아니더냐?”

왕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추와 이존오가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화가 났다. 이존오와 정추를 하옥하라 명했다.

상감마마. 노여움을 푸소서. 저들이 고한 말이 좀 과하나 타당한 면도 있사옵니다.”

이 일을 지켜보던 목은 이색이 변호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이존오가 고한 일들은 모두 왕이 허락하고 부여한 것들이었고 신돈에 대한 탄핵 사유들은 왕의 존엄을 무시하며 자신에게 향한 극언이라 여긴 임금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을 순군옥에 가두었다가 목은 이색 등이 옹호하자 겨우 극형은 면하였으나 모두 좌천되고 말았다.

<고려사>에는,

― 간관 정추와 이존오가 신돈의 죄악을 극렬히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모두 좌천되어 쫓겨났다.

고 기록하고 있다.

 

<창녕신문> 2023년 9월 6일(수) 11면에 연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