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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9장 전민변정도감과 민생개혁(4)

by 남전 南田 2023. 10. 26.

보림사 석탑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9장 전민변정도감과 민생개혁(4)

* 송강의 새집과 탄핵과 암살 위기

 

송강 새집에 입주한 신돈에게는 좋은 일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왕이 직접 와서 축하잔치를 벌이고 별채 문수암에 찾아와 함께 예불을 올리며 무한한 신뢰를 여러 조정 중신들에게 표시한 것이 널리 알려졌다.

<고려사>에는 문수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법 긍정적인 기술을 하였다.

“또 북쪽 뜰에 여러 겹문이 딸린 깊고 그윽한 별실을 지어놓고 밝은 창 아래 깨끗한 안석을 깔고서 향을 피우고 홀로 앉아 있었는데 그 엄숙한 모습이 아무런 욕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고급 가구나 장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니 소박한 분위기였던 모양이다.

아침이면 찬성사 이춘부와 밀직 김란이 송강 집에 와서 조반을 함께 들면서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한 보고와 그날 하루에 처결할 정사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또 감찰대부 손용이 자주 와서 조정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알려 주어서 여러 일을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청탁이나 호소하려고 오는 자들의 응대는 하급 관리였던 최사원(崔思遠)과 기현과 그의 부인이 맡았다. 그 바람에 최사원은 신돈의 심복이라, 기현부부가 뇌물을 받고서 출입하도록 했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뿐만 아니라 청탁하려는 본인은 나타나지 않고 그 부인을 시켜 보내곤 했다. 여인이 미모로 첨의를 유혹해 보려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는데 속옷 바람으로 문수암 선방에 들어가 정을 통했다는 둥, 판사 박 아무, 삼재(三宰) 강 아무 집 부인은 청탁을 하려고 찾았다가 신돈이 욕보이려 하자 도망쳤다는 등 여러 소문이 퍼졌다.

거기다 강반야가 모니노를 데리고 와서 안방 차지를 했으니 누구든지 처음에는 신돈의 아내로 여겼다.

송강에 집을 지어 입주한 얼마 후에 환관 신소봉과 이인임이 신돈에게 의논하였다.

이제 왕자 모니노에게 글을 가르쳐야 될 시기인 듯한데 한씨 여염집에 계시기에는 좀 그렇소. 이제 첨의께서 자리 잡았으니 모자를 이 집에 모시면 좋을 듯합니다. 왕손이라 소문이 널리 나면 별로…….”

강반야가 사복시 시승 강성을의 딸이며 강성을은 편조 왕사의 유모 아들이라고 점점 알려졌다. 또 강반야는 궁인으로 왕의 시침을 들어 왕자를 낳은 귀한 신분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왕자 모니노와 같이 온 유모 장씨가 귀띔을 해서 여럿이 알게 되면서 송강의 집 여인들은 강반야를 마님이라 불렀다.

<고려사>의 기록 또한 그 시절의 풍습에 장단을 맞추어 강반야도 신돈의 비첩이라 기술한 것이다.

 

두 번에 걸친 탄핵과 암살 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신돈은 스스로 물러나 산으로 가겠다고 하는 등 위기를 모면하는 일이 생겼다.

상호군 조린은 신돈을 노화상(老和尙)이라 부르며 비판적이었다. 첨의 오인택에게 신돈을 욕하며 비난했다. 오인택은 최영에게 쫓겨난 장수였는데 신돈이 등용하였던 장수요 재상이었다. 조린 오인택은 전직 재상들, 장수와 상호군들과 호응해 왕에게 탄핵 상소하기로 하였다.

이 일은 신돈의 동생 신귀가 먼저 알게 되었다. 판사 신귀는 무반 출신으로 찬성사를 지낸 강윤성(康允成)의 사위이며 이성계의 동서이기도 했다. 친했던 판사 강원보가 오인택의 신돈 탄핵계획을 신귀에게 귀띔하니 곧바로 신돈에게 달려가 알렸다.

참의 형님! 오인택과 김원명 등 무장들 여러 명이 형님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려 합니다.”

누구누구라고 알리자 신돈은 군부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무장들의 소요에 깜짝 놀랐다.

뭐라고? 날 탄핵해?”

동생 신귀는 오인택, 상호군 조린 외에 김원명, 경천홍, 목인길 등 내노라 하는 여러 무장들을 거론하였다. 최영이 좌천되고 난 다음 그 병권을 김원명에게 몰아주기도 했었다. 또 최영에게 쫓겨난 오인택을 다시 조정에 불러들인 것도 그가 아니었던가! 둘은 의리도 없으니 그저 한숨이 나왔다.

좋은 인연이 악연으로 변한 것이로구나.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믿었던 자들인데 배반하다니!

신돈은 그 소식을 듣고서 왕을 알현하러 궁으로 들어갔다. 신돈은 왕 앞에 엎드려 호소했다.

노승이 이제 낡은 옷을 걸치고 바리때만 지고 산림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공민왕은 벌써 장수들의 탄핵 상소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귀 밝고 눈치가 빠른 시중 이인임이 무장들의 움직임을 모를 리 없었다. 사관 이존오와 좌사 정추가 신돈을 아주 비난하는 상소를 한 때와 마찬가지로 군주의 위신은 무너뜨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격노했다.

이 시중이 와서 첨의의 탄핵 상소에 대해 고합디다. 놈들이 과인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짓을 하였으니 순군에 하옥시켜 엄히 문초하겠소.”

군부의 신돈에 대한 도전은 신귀와 이인임의 고변으로 무산되었다. 오인택 김원명을 비롯한 탄핵 상소에 가담한 무장들은 파면, 유배되거나 좌천되는 고배를 마셨다.

 

이듬해 10월에 신돈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또 있었다.

이번에는 문관 출신 사대부들이 신돈을 암살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명문 세가 문관들이 중심이었는데 미천하고도 한미한 승려 신돈 정권을 뒤집어엎으려는 것이었다. 평소 간관인 내서사인이었다가 좌천당해 신돈에 대한 불만이 쌓인 김제인이 앞장서 전 밀직 김정과 함께 김홍조, 조사공 등등과 힘을 합쳐 살해하기로 모의하였다, 그런데 지난해 유배된 사람들도 여럿 동조했는데 김원명과 경천홍 등이 함께 했기에 신돈을 더욱 놀라게 했다.

이 일은 시중 이춘부가 왕에게 아뢰어 알려졌는데 정운은 한천이란 청주사람과 함께 이춘부에게 달려와서 고발했던 것이었다. 공민왕에게는 자신의 존엄을 무시하고 해치는 짓에 격분했다. 그들을 순군옥에 가두어 국문하고 곤장을 쳐서 모두 유배시켰다.

신돈은 무장들의 반발과 사대부 출신 문관들의 암살 기도에 위기감을 느껴 더욱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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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신문> 2023. 10 .16(월) 연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