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타작
첫더위가 시작되는 유월은 보리가 한창 익어 거두는 시절이다. 짙푸르던 들판은 하룻밤 사이에 듬성듬성 노란빛이 돋아 오르고 종달새가 보리밭 이랑사이로 내려앉으면서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앞세우고 부지런히 새 둥지를 찾아간다. 지난밤 아무도 모르게 도랑 가에 피어올랐던 안개도 성급하게 뜨거워지는 햇살에 그만 맥을 추지 못하고 사라지면 초여름의 아침은 응당 그렇게 시작하였던 것처럼 잠방이 걸친 농사꾼 아버지와 아들은 보리밭으로 달려 나와 “망종이 내일 모래니 이제야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겠구나.” 하고 허리를 펴는 것이었다.
보리 타작은 곧 인고(忍苦)의 수확이었다. 기나긴 겨울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참고 또 참았다. 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갈가마귀 떼에 보리가 뜯기어 나가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봄날은 간다.” 그때 그런 유행가가 보리밭을 매던 아버지와 아들에게 들려 오기도 했다. 장터에 자리잡은 서커스 천막 꼭대기에 매단 스피커에서. 그래서 아들은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보리밭 매며 배웠다. 최근 그 노래와 같은 영화가 나왔다는데. 그 시절은 보리 고개란 말이 위세를 부리던 때라 소년에게는 봄날은 “연분홍 치마에````” 꽃잎이 흩날리는 그런 날들이 아니었다. 피골이 상접한 동네 아이들 중 하나였고 시커멓고 거친 보리밥이라도 배 터지도록 실큰 먹고 싶은 가난한 농사꾼 집 아이일 뿐이었다.
들판에 노란빛이 가득 차면 낫을 들고 온 식구가 새벽 일찍 밭에가 하루 종일 허리가 아파도 아픈 줄을 모르고 보리를 베고, 이윽고 소달구지에 보릿단을 가득 실어 마을 어귀 배꾸마당으로 실어 날았다. 보리 타작을 하게되면 아이고 어른이고 도리깨질에 땀도 나고 목이 말랐어도 신명이 절로 나고 기운이 솟았다. 보리 까끄라기 먼지투성이가 되면 마을 앞 낙동강으로 달려가 풍덩! 강물에 뛰어 들면 그것으로 풍년이고 행복이었다.
보리 고개 없는 세상이 되더니 보리 타작하는 풍년 행사도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다보면 보리밭이 어쩌다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정말 봄날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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