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유월이 왔다.
한창 쇠고기로 전국이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유월은 6․25가 일어난 달이고 어렸던 나는 그 해 여름을 피란민 수용소에서 굶주리며 전쟁을 저주하며 지내야 했다.
그 피란민수용소를 유월에 찾아보았다. 지금은 김해시 칠산동이겠지만 그때는 김해읍 칠산리 곤지나루라 불리는 작은 뜸의 학교였다. 지금은 그 학교도 폐교가 되어 교사(校舍)만 일부 남아 오징어 건조장으로 변해 있었다.
장유에서부터 흘러오는 큰 내가 있고 칠산동 마을 앞 들 복판에 똥뫼(=獨뫼)가 있는데 그걸 의지하고 인가가 몇 집 있고 학교가 있었다. 내를 건너 부산으로 갈 수 있는 나루가 바로 오늘 찾은 곤지나루이다.
지금은 부산신항으로부터 장유를 거쳐 북쪽으로 가는 철로공사가 한창이어서 들판의 여유로운 풍경은 사라졌다. 그러나 피란민수용소로 쓰였던 학교 건물 일부는 남아 비록 천막을 뒤집어 쓴 형태로 변했지만 그 옆 소나무처럼 칠십을 바라보는 나를 맞는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은 바늘을 휘어 낚시질을 해 고기를 잡아먹는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낚시로 고기를 낚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들판 벼논을 다니며 메뚜기를 잡아 식량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러다가 수로(水路)에 고무신 한 짝을 빠트리고 건지지 못해 피란살이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한 발은 고무신, 한 발은 짚신을 신고 걸었던 기억이 60년쯤 지난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참! 쇠고기로 열을 올리고 있는 저 사람들이 그때 그 시절의 피란민수용소에서 굶주리며 들판을 헤매며 메뚜기를 잡아 허기를 때우던 소년의 절박한 마음을 알아주기나 할까?
(또 6.25가 터진 달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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