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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소설

이별없는 날

by 남전 南田 2009. 12. 17.

단편소설

 이별 없는 날

 

                                                                                                                                       김    현    우

졸작 단편소설  <이별 없는 날> 이 경상남도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경남문학 "(2009 가을호 88호)에 실렸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비둘기는 역 광장을 점거한 최초의 무리이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광장 이곳저곳을 날며 먹을 것을 찾아 날아다니거나 우르르 땅바닥에 내려앉아 열심히 기어 다니며 부리로 땅을 쪼아댔다.

해가 떠오르고 열차가 떠나거나 도착하면서 노란색 택시들이 역전 광장 주변에 모여들었다가 뿔뿔이 제 갈 길을 찾아가고 나면 오전 10시가 넘고 그때쯤이면 하나 둘씩 허리 굽은 인간들이 나타나 비둘기들의 영역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새로 나타난 그들은 할 일 없고 갈 곳 없고 먹을 것 없는 3불의 무리였다. 유식한 말로 하자면 삼중고라던가? 아니 3대 문제라던가? 빈곤, 질병, 고독이랬지? 거기다 요즘은 아무 할 일이 없다는 무위(無爲)도 끼워 넣었다는데. 하여간 오후가 되면 외롭고 할 일없으면서 병원 출입은 잦고 돈도 없는 그런 저런 무위의 군중 100여명이나 모여들었다. 반정부 시위를 하려고 온 게 아니니 경찰도 기자도 관심가질 대상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나무그늘과 잔디밭, 긴 의자를 모조리 차지하고도 모자라 건물의 그늘이란 그늘은 몽땅 차지하면서 비둘기들을 광장에서 몰아냈다.

“에에! 이놈들! 똥을 여게다 싸면 어짜노? 버릇없는 놈들!”

똥오줌 구별할 줄 알면 누가 미물이라 하겠는가? 비둘기들이 싸 놓고 간 똥을 신문지로 벅벅 문질러 닦으며 박영감이 호령을 했다. 그는 자전기에 실고 왔던 바둑판을 의자위에 올려놓았다.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한 박영감은 바둑판을 벌려 놓으며 옆에 따라왔으면서도 멀찍이 떨어져 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 먼눈을 팔며 딴전을 피우는 최노인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최주사가 내 맞수인데 아직 안 나왔지? 한 판 해 볼까? 최가야. 한 점에 10원 어때?”

“맨날 지면서도 큰소리야? 공부 좀 해라. 세월이 갈수록 실력이 오그라들면서 점에 10원이라? 어디 돈이나 있나?”

“내가 열 번이기면 최가 넌 겨우 대여섯 번 이기면서 무슨 소리고? 세월이 가니까 나보다 실력이 오그라들면서! 같은 최가라도 최주사는 바둑을 잘 두는데 너는 영 아이야. 난 예전에 2단까지 갔었어. 기원 출입도 많이 했다고.”

초장부터 둘은 서로 말씨름으로 기선 제압하려고 떠들면서 바둑알을 집어 들었다. 박영감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최주사를 들먹거리면서 최노인의 기를 꺾으려 들었다. 최주사는 정년퇴직 공무원이었는데 그들보다 연장자였다. 그는 오전 느지막하게 역 광장에 나타나곤 했다. 최주사 뒤를 따라 곡상을 했다는 신사장이란 사내도 나오곤 했는데 오늘은 일찍 나와 그들 곁에 섰다. 그들은 역 광장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게 된 사이로 바둑 실력이 서로 비슷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지면 무조건 다음 판에는 흑을 쥐고 먼저 선수해야 했다. 어제 졌던 최노인은 먼저 흑을 집어 딱! 소리가 나도록 놓으며 말했다.

“왕년에 기원 안 다녀 본 놈이 어딨어? 왕년, 얘기가 나오니까 생각이 나서 말하는데 내가 예전에 한일합섬에 다닐 때 참 날렸지. 월급도 많이 받았지만 도처에 도화춘풍이었단 말이지. 온 전신에 아가씨들이었어. 그때 내 인기가 좋았지. 지금 공장이 다 철거돼 나가고 아파트 짓는다며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지만 6, 70년대 한일합성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큰 기둥이기도 했지. 사원수만도 몇 만 명이었다고!”

“에이! 몇 천 명이었겠지.”

“하여간 그때 인기 절정이었지. 날 잡아 잡숴하는 년들이 부지기수였어, 닥치는 대로 주워 먹는 거야. 먹어도 먹어도 그 수가 줄지를 않았다니까! 친구들은 날 하이에나 최라고 불렀지. 썩은 것도 먹고 남의 것도 빼앗아 먹고 죽은 것도 먹고 산 년도 먹고······. 배탈? 배탈 같은 거는 없었어. 그러다 마누라를 골랐지. 제일 지조가 있는 걸로다.”

“에이! 아침부터! 뭘 잘못 잡수었나? 노인네가! 난 해장도 못하고 나왔는데!”

“난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왔어. 하여간 그런 시절이 있었단 말이야. 박 영감이야 그런 재미도 못보고 사셨지?”

바둑알이 제법 판에 절반 쯤 깔리고 서로 야심을 들어내지 않으면서 포석을 끝내고 공격 기회를 노리는 형국인데 갑자기 광장 한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 그 바람에 바둑판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어릴 적 구경 중 재미난 것이 불구경이고 싸움구경이라 했으니 사람들이 이번에는 우르르 싸움판으로 몰려들었다. 광장 이쪽저쪽 할 일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던 중늙은이들이나 소눈깔처럼 눈만 커다랗게 떴지 초점이 없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멍청하게 앉아있던 폭삭 늙어버린 노인들도 어슬렁거리며 싸움판으로 모여 들었다. 모두들 뒷짐을 지고서 평상시의 정적을 깨트린 사건에 흥미진진한 표정들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박영감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우리도 가 볼까? 내가 이제는 한 물 갔지만 난 유도가 3단에 태권도가 2단이었어. 싸움판에서 내게 걸리면 뼈도 못 추렸지. 웬만한 놈은.”

“흥! 박영감 후라이는 세월이 갈수록 단수가 높아지구만. 언제는 태권도가 4단이고 뭐가 몇 단이라 했는데? 그건 보릿단도 아니고 저기 번개시장에 파는 대파나 정구지단도 아닌데 늘었다 줄었다······.”

바둑판 주위에 섰던 관람객이 썰물처럼 빠지자 그들도 바둑은 잠시 접고 싸움판으로 갔다. 가서보니 알 만한 사람들이 멱살잡이를 벌이고 있었다. 몸집도 키도 작은 쪽은 이제 겨우 환갑을 넘긴 김기사이고 낯이 새까맣게 그을리고 머리가 허연 사내는 실은 쉰 대여섯밖에 되지 않았지만 늘 환갑 진갑을 다 넘겼다고 풍을 치는 사내였다. 김기사는 택시기사 출신이고 머리가 허연 사내는 공가로 평생내 식당을 하는 마누라 덕만 보며 빈둥빈둥 놀고먹었다 자랑삼아 말하곤 했었다.

김기사는 트럭도 몰고 버스도 몰았고 그러다 택시를 십여 년 이상 운전을 했고 나중에는 제 명의의 개인택시도 받아 영업을 했다. 그런데 그는 성격이 급하고 운전을 난폭하게 하는 못된 버릇이 젊었을 때부터 있었다. 차를 몰면 과속으로 달리기를 좋아했는데 제 앞에 얼쩡거리며 천천히 가는 차가 있으면 너무 답답해 견디지를 못하고 두 말 않고 추월해 버렸다. 어느 날 큰 사고가 났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좌회전을 했는데 반대편에서 뒤늦게 직진을 해 오던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쳐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여유롭게 천천히 출발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팔 다리가 모두 박살이 났는데 그 바람에 1년여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다행히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불구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다시는 운전대를 잡을 만큼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운전하는 것이 딱 싫어졌던 것이다. 그는 그 이후 아무 일도 않고 놀았다. 아내가 식당에 나가 일해서 벌어온 것으로 지냈다. 나이가 더 드니 갈 곳은 없고 그래서 역광장에 나 앉았다.

둘이 싸운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10원빼기 고스톱을 치는데 눈치 빠르고 사기 잘 치는 공가가 언제나 김기사의 돈을 따먹곤 했다. 어제도 서쪽 벤치 근처에서 댓 명이 모여서 고스톱을 쳤는데 점에 10원씩 했음에도 하루 종일의 결과는 김기사가 2천원을 잃는 것으로 끝이 났다. 노름 밑천을 그와 친한 공가가 빌려 주었다. 어제는 오늘 아침에 갚기로 찰떡 같이 공언해 놓고도 지금은 딴청을 피우며 오리발을 내밀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비가 벌어진 것이었다.

구경꾼들은 오랜만에 서부 활극을 구경하게 되어 즐겁다는 표정들이었고 아무도 싸움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땡볕 공터에 나가 선 두 사내는 멱살을 잡고 밀고 당기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내 돈 내 놔!”

“어째 니 돈이냐? 내가 다 잃었으니 그거 내 돈이지.”

“내가 빌려 줬잖아?”

“내가 빌렸어? 내가 잃은 돈 공가 네 놈이 돌려 준 거지.”

“야, 이놈아! 어제 같이 고스톱한 사람들이 모두 멀쩡하게 살아있다! 증인이 있단 말이다. 내 참! 어이 달구아재! 내가 김기사에게 여러 번 돈을 빌려 준 것이 모두 2천원인데! 맞지요?”

“내가 언제 빌렸어? 달구아재. 백 원씩 이백 원씩 그거 모두 내가 잃은 돈이었지 않소?”

그때 공가가 기가 막히는지 김기사의 멱살을 두 손으로 조이면서 마구 흔들어 냈다. 김기사는 죽는다고 비명을 치며 구경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 아이고! 이, 이놈이, 사람 잡네!”

“인자 그만 해라! 환갑지낸 사람들이 챙피하구로 싸움박질이 뭐꼬? 당장 손 못 떼겠나?”

그때 나서서 고함을 친 사람은 다름 아닌 태권도가 몇 단에 유도가 몇 단인 박영감이었다. 그의 서슬 퍼런 고함에 찔끔 놀란 공가가 갑자기 김기사의 멱살을 탁 놓으며 밀쳐버렸다. 순간 어이없게도 다리가 부실한 김기사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는 땅바닥에 누워 꼼짝을 않았다.

같이 고스톱 판을 자주 벌린 달구아재라 불린 영감이 김기사가 한참이 지나도 일어나지를 않자, “그만 일어나!” 하고 달려가 김기사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황하게 외쳤다.

“어이! 김기사! 정신 차려!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아마 넘어지면서 땅에 머리를 크게 부딪친 모양으로 김기사는 졸도해 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19 불러! 119!”

누가 고함을 쳤다. 여럿이 김기사에게 달려들어 흔들기도 하고 고함을 쳐 정신을 차리게 하려했으나 쉽게 깨어나지를 않았다. 싸움 구경하려고 왔던 젊은 택시기사들이 그제야 나서서 김기사를 들쳐 업어 택시에 실었다. 119 구급차를 부르면 시간이 걸리고 번잡해 지니 역에서 몇 백 미터도 안 떨어진 가까운 동마산병원으로 달려갔다. 공가는 하도 어이가 없는지 기가 막혔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선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박영감이 고함을 또 쳤다.

“어이! 공가야! 너도 병원에 따라가야지! 치료비는 네가 내야지! 다치게 한 사람이 너니까 말이야.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어제 그제 나온 사람이 무슨 힘이 있을 끼라꼬 그렇게 떠밀어?”

그 소리에 고스톱 멤버들이 공가의 등을 떠밀며 우르르 동마산병원 쪽으로 몰려 가버렸다. 삽시간에 역 광장은 조용해져 버렸다. 비둘기 떼가 역사 지붕에서 광장 중앙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로 푸르르 날아들었다. 분수는 땅바닥 높이와 같고 물이 나오는 구멍이 타일 바닥 여러 곳에 있어 물이 나오는 한낮이면 아이들이 와서 좋아라 물줄기속으로 뛰어들었다. 여름 한 철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면 어른들은 할 일없이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할 뿐 분수는 어린애들 차지였다. 아이들은 옷이야 젖든 말든 물줄기속으로 달려 들어가 여름 한때를 즐겼다. 늙은이들이야 체면이 있으니 아무리 더워도 부채질이나 하고 그늘을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닐 뿐 분수 속으로 뛰어 들지 못했다. 차라리 에어컨 바람이 잘 나와 시원한 역 대합실을 찾아가면 될 것이지만 그것도 눈치가 보여 잘 가지 않았다. 물론 역 대합실에 들어가면 쫓아내지는 않지만 직원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구시렁거리며 빗자루로 먼지를 풀풀 날리며 청소를 하는 척하며 쫓아내려 했다. 노인네들이 눈치를 보며 붙어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어쩌다 잠깐씩 들어가 엉덩짝을 의자에 붙였다가 땀도 식히지 못하고 물러났다.

노인네들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것, 성가신 거 간섭받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 며느리 눈치 보기 싫어서 아예 따로 늙은 내외만 산다는 사람이 많았다. 거창하고 시설이 좋은 노인복지회관이 있어도 가지 않는 이유도 이것저것 거치적거리는 게 많고 단지 성가시고 복잡한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거기가면 노인네들이 많이 모여 들기도 하지만 체육기구도 있고 바둑 장기 오락기구도 있고 노래교실도 있고 춤교실도 있다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적당한 운동이 잘 먹고 잘 자는 것과 함께 장수의 3대 요건이라고 강사들이 강조하건만 이래라 저래라 알게 모르게 번거롭게 굴어 그게 또한 괴롭고 싫었다. 뿐만 아니라 다 같이 늙었으면서도 나이 많은 자가 은근이 유세를 하고 나이대접을 받으려 할 때는 더욱 싫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내버스를 타야하는 일이었다. 버스 요금도, 시내버스를 오르내리는 것 자체도 부담이었다. 늙은이가 천천히 몸을 움직여 타기에도 시간이 걸렸고 급하게 내리려면 다리가 꼬이지 않으려 조심해야 되니 보조가 더욱 느려지니 이건 숨 막히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타고 앉은 승객들, 말은 않고 노려보는 기사의 눈치가 보여서 더욱 주눅이 들었다.

“동네 경로당에 갔더니 이건 더 하데. 신참자는 완전히 머슴이고 심부름꾼이야. 심지어 물도 끓여라, 커피도 타 와라. 아니! 넌 여유가 있으니 커피 값도 한 번씩 부담해라. 동리를 돌며 폐지도 고물도 주워 와라. 뭐 경로당 경비가 부족하다나? 경로당 회비를 매 월 거두면서 말이야. 거기는 나이 육십 댓은 빠릿빠릿한 청년이고 칠십은 넘어야 이제 한고비 넘긴 장년이고 칠십 댓은 돼야 노인대접을 받는 곳이 경로당이야. 그러니 어디 갈 맛이 나야지.”

박영감의 말에 최노인은 한술 더 뜬다.

“난 운동이 하고 싶어서 거, 뭐야? 게이트볼인가 하는 걸 배워보려고 했지. 우리 동네에 그게 있거든. 한번 슬슬 가서 알아보니 거기도 까다롭데. 회비도 있고 회원이 지켜야할 수칙도 있었어. 그거야 타당하다 싶었어. 그런데 거기다 용납 못할 것은 선후배가 있데요. 신참자는 나이 적은 선배에게 예의를 깍듯이 지키고 한 턱 거룩하게 내야 한데나? 아이고! 이 나이에 선후배가 뭐꼬? 이 하이에나 최가 어떤 분인지 시시콜콜 설명을 해 주자니 그렇고! 에이! 늙은 놈들이 더 유세를 하데!”

그때 모자를 쓴 늙은이 하나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바둑판 근처 있던 사람들이 서로 알은 척 눈인사를 주고받았으나 모자를 쓴 늙은이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아재씨 오셨소? 며칠 안보이더니······그새 뭐 하셨소?”

최노인의 말에 늙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흔히들 그를 보고 최주사라 불렀다. 시청인가 동사무소인가 근무를 했다는 일흔이 넘은 사람이었다.

“뭘 하긴 뭐해? 방구들 둘러메고 세월 보냈지. 감기인지 몸살인지.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고생을 했지. 요새도 새벽이면 열이 나고 진땀이 나서 옷이 흠뻑 젖어버려. 완전히 기가 빠져 그런가 봐. 그나 저나 조카님은 요새 동사무소 공공근로 안 나갔나?”

“며칠 갔지요. 그런데 그거 전봇대나 남의 집 담벼락에 붙은 광고지 떼는 일말입니다. 그거 힘들데요. 동리를 빙빙 돌며 그걸 떼자니······. 글쎄 그 놈으 스티카가 찰떡 같이 달라붙어서 떨어져 말이지. 그리고 여러 명이 조를 짜서 다니는데 한 며칠 하고 나니까 일거리가 없어요. 그래서 놀이터 같은데 가서 한 나절 놀기도 했어요. 놀며 땡땡이를 치니까 미안하데요.”

“난 공직생활을 했다고 그런 일조차 돌아오지 않아. 노인에게 돈이 궁하긴 마찬가지인데 말야!”

“아, 아재야 연금 받아 사시는 분인데 공공근로 같은 거 해당이나 됩니까? 극빈자, 생보자 같은 사람들이 하지요. ”

“아냐, 연금이 몇 푼 안 돼! 그거 받아 생활비로 쓰면 짝짝한데 병원비다 잔치다 하고 목돈 들어갈 구멍은 많으니 낭패지. 한 달에 청첩장 열 장만 들어와 봐. 예전에 받아먹은 것인데 안 가볼 수가 있나? 봉투 하나에 3만원이면 한 달에 30만원이 대책 없이 그냥 나가 버리는 거야. 우리 퇴직자들 어쨌든지 체면치레를 못하고 살면 그건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네. 간혹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 나가면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은 죽었거나 아니면 돈 떨어져 출입을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이지.”

최주사는 전직 공무원답게 식견 있게 자신의 가난을 얘기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가는 무료급식소를 가지 못한다. 안면 있는 사람을 만날까봐 겁나서다. 그래서 그는 동마산병원 옆에 있는 식당에 갔다. 그곳은 11시 20분쯤이면 곰탕을 단돈 1,500원에 먹을 수 있었다. 12시만 넘으면 일반 손님을 받았다.

“오늘은 우리와 같이 갑시다.”

박영감이 역 건물 정면 높이 걸린 큰 시계가 11시 10분을 가리키자 일어나며 최주사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최주사는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채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역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 아침을 먹지 못하고 지냈다. 홀아비들이 많았다. 그들은 아침밥을 해 먹기 귀찮아서, 쌀 씻고 그릇 씻고 반찬 사기 번거로워서 아침은 걸렀다. 물론 돈도 없었다. 그러니 점심은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시내버스 요금을 아끼려 1시간을 걸어서 오는 노인도 많았다. 가까운 석전동이나 양덕동은 물론 합성동 산호동 회원동 조금 더 멀리 구암동이나 구마산 쪽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다. 길거리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1kg에 4, 50원을 받겠다고 박스나 파지를 리어카가 아니라 낡은 유모차에다 바리바리 주어 담던 노인들이 또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료급식소 앞은 경제적으로 힘이 없어져 사회적 냉대와 상실의 고통으로 비록 한여름이지만 한파를 느끼는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사회에서 잊힌 그림자들이었다.

부인이 살아 있는 자들은 아침을 먹고 오지만 역시 무료급식소의 밥을 기다렸다. 그들은 조금 행복한 편일까? 11시 30분이면 무료급식소가 문을 열었다. 토, 일요일이면 가톨릭여성회관 급식소는 문을 닫았고 역 광장 왼쪽 호텔 옆에 컨테이너에서 무료 급식을 하곤 했다. 그곳은 시의원인가 국회의원인가 출마할 뜻이 있는 사람 몇이 모여 봉사하는 곳이었다.

“오늘 한 번 경험삼아 가 봅시다. 모자를 푹 눌러쓰면 누가 최주사인줄 알겠소?”

한 번 더 박영감이 권했다. 최노인도 거들었다. 오늘은 꼭 데려가야겠다고 둘이 작심한 모양으로 최주사를 붙들고 늘어졌다. 잠깐 실랑이를 벌이다가 최주사가 졌다는 듯 그들에게 끌려 역 광장을 내려갔다. 무료급식소는 6차선 길을 건너 조금 걸어가야 있었다. 20분이 채 못 되었다 싶었는데 벌써 그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딴전을 피우면서 급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어!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오늘 친구 따라 별 짓 다 하네. 아직 공짜로 밥 얻어먹을 군번이 아닌데! 노인복지회관에도 점심은 1,500원이라는데! 그런 곳에도 무료급식하면 안되나? 시장이란 사람이 좀 신경을 쓰면 노인복지 예산 배정이 될 터인데!”

행인이 지나가는 쪽을 애써 외면하며 선 최주사가 허튼 소리를 했다. 줄을 서 있는 것이 퍽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박영감은 그런 태도에 코웃음 치며,

“좀 뻔뻔해 지소. 여게 줄 선 사람 중 억대 부자가 여럿이요. 집이 수 억 나가지만 현금이 없다 이거요.”

하고 말했고 최노인은 턱짓으로 억대 부동산 부자들을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참! 아재에게 조용히 의논드리려고 했는데······. 이거 자꾸 중신이 들어오는데 어째야 좋겄소? 내가 뭐 부동산이 많소? 현금이 많소? 그런데 이 놈으 여자들이 한사코 나하고 살겠답니다. 내 코가 물건 같이 아주 잘 생겨 놓으니 반해가지고······.”

“재산 빼 갈려고 오는 여자가 많다는데 조카님이야 그런 걱정도 없지?”

“그래 말이요. 여자들이 여럿이 나 하고 살 생각이 있나 봐요. 참, 내가 예전에 한일합섬에 근무할 때 하이에나 최라고 불리었는데 말이요.”

“또 그 얘긴가? 하여간 같이 살겠다는 여자가 있으니 조카님이야 행복한 거네?”

그때 옆에 섰던 박영감이 최주사의 말을 냉큼 받아 초를 팍 쳤다.

“최가 저 놈 공갈에 속지 마이소. 어떤 미친년이 가랑이 쩍 벌리고 살로 온단 말이요? 재산이 있나? 뭐가 있나? 최가 지가 환장을 해서 하는 소리요. 곧이듣지 마세요.”

점심을 먹는 곳은 전쟁판이었다. 누가 밥을 훔쳐가지도 빼앗아 가지도 않을 텐데. 얼마든지 느긋하게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먹어도 되는데 그게 아니었다. 허겁지겁 정신없게 퍼 먹어댔다. 배가 고팠을 것이었다. 하루 한 끼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홀아비 최노인처럼 박영감도 4년 전 마누라가 저 세상으로 갔기에 혼자 살았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아비를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다하고 석전동 산비탈 주택의 단간 전세방에 살았다. 그리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듯 역 광장을 드나들었다. 그는 버릇처럼 배를 탄 마도로스라고 자랑을 하곤 했다.

“내가 대학만 다녔어도 배를 타지 않았지. 배를 타기 전 탄광촌에 가서 광부가 되어 석탄을 좀 캐 봤는데 그건 굴속에 들어가 일해 본 놈만 그 기분을 알 꺼야. 굴이 갑자기 무너진다면 골로 가는 거야. 청춘이고 뭐고 끝장이었지. 캄캄하고 답답한 굴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 배를 탔지. 젊었을 때는 거 마도로스파이프가 어쩌고 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배를 한 번 타봐! 상선이나 유조선 같은 거 타면 조금은 편하지 화물선! 원양어선! 그건 인간이 아니야! 완전히 동물이지. 동물도 그런 동물이 없었지. 큰 놈이 작은 놈 뚜드려 패고 또 작은 놈은 그보다 아랫놈을 두들기고……그러다 여럿에게 밉보이면 어느 날 고기밥이 되는 거야. 여럿이 그 놈을 반짝 들어 시퍼런 바다에 처넣는 거야. 간단하지. 실족으로 인한 사고사였다 하고 본사에 무전연락하면 그만이야. 비밀 누설? 그건 없지. 만약 그럴 기미가 있으면 그 놈도 고기밥이 되는 거야. 살벌하지? 살벌해. 난 그래서 대학 다녀서 배를 안타도 되고 광부가 되어 수백 미터 탄광에 안 들어가도 되는 그런 팔자가 되고 싶었어.”

점심도 먹었겠다, 배도 부르겠다, 노인네들은 이 구석 저 그늘에 모여 앉아 시답잖은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의 추억담에 침을 튀겼다. 박영감의 배 타던 얘기는 여러 번 들어서 신선미는 없었지만 보통 육지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소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까 애들처럼 싸움질하던 사람들 어떻게 됐어? 정말 김기사가 저 세상으로 갔나?”

최노인의 새삼스런 깨우침에 사람들 모두 ‘아, 참! 어떻게 됐지.’ 하는 표정들로 서편 주차장쪽 나무그늘에 모여 앉은 고스톱꾼들을 바라보았다. 그 쪽에서는 평소처럼 고스톱을 치느라 고개를 맞대고 정신이 없었다. 그 속에 아까 자빠져 졸도해서 병원에 실려 간 김기사도 멱살잡이를 했던 공가의 모습도 보였다. 다들 무사한 모양이었다. 보통 화투를 치자면 다섯 명이 있으면 되었다. 나머지는 객꾼이고 구경꾼이다. 어쩌다 돈을 딴 사람이 인심 쓴다고 소주를 한 병 사거나 새우깡이나 한 봉지 사면 모두들 즐겁게 먹어 치웠다. 새우깡 한 봉지에 몇 개가 들었는지 몰라도 둘러선 사람들이 한 두 개씩 집어 먹으면 금방 없어졌고 소주는 아주 작은 종이컵에 반 잔 씩 나누어 마셨어도 순서가 뒤처지면 구경을 하지 못했다.

나무그늘이 오전과 달리 빙글 돌아갔으므로 사람들도 그늘 따라 옮겨 앉는 오후. 그때쯤 사내들 사이를 힐끔거리며 쪼그랑 주름투성이 얼굴의 여자가 두엇 나타났다. 모두들 그녀들을 외면하지만 흘끔흘끔 바라보는 늙은이들도 있었다. 쉰 살이 넘었거나 예순 살이 되었을 법한 아주머니들은 광장을 한 바퀴 시위하듯 돌았다. 택시들이 서는 광장 초입 벤치에는 아까부터 좀 젊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완전히 돼지 두상이었다.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르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 그렇게 나타나는 여자들이 대여섯은 되었다. 그녀들은 돈을 벌려고 생활전선에 나선 여자들이었다. 단 돈 만원에. 아니 흥정만 잘하면 단 돈 5천원에.

“저 년들 보다 고급도 있어.”

항상 여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신사장이 슬슬 운을 뗐다. 신사장은 왕년에 연탄·쌀가게를 했던 사람으로 아직 현금 10만 원 정도는 호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최노인이나 박영감은 홀아비지만 짐짓 흥미가 없다는 듯 말이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다들 얘기해 보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당한 일은 아니고······. 내 친구 얘기요. 저기 황안과 있잖아? 거기 내 친구가 백내장 치료하러 갔다가 나오는데 그 앞에서 웬 여자가 아는 척 하더래. 처음 보는 여자였는데 옷차림은 조금 수수했지만 몸매는 그럴 듯 했던 모양이지. 저, 저 년들 보다 수백 배 나았단 말입니다. 최주사님.”

신사장이 운을 떼자 최주사가 웃으며 대꾸해 주었다.

“혼자서 떠들면 그거 아주 싱겁네. 그러기에 옆에서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 이야기하는 사람이 흥이 나지. 그래! 어찌되었어? 요새 여자들 꽃뱀이라던가? 사기꾼이 많다던데? 노인들 홀려서 돈이나 우려내고 사람을 피박 쓰게 만들고 한다던데?”

“그, 그러게 말입니다. 조심해야지요. 처음에는 그 친구도 조금은 머뭇거려 지더랍니다.”

신사장은 조금 열을 내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떠들었다.

“그런데 여자가 너무 잘 아는 척하니까 혹시나 예전에 오다가다 만났을 지도 모른다 싶더래. 그래서 그랬다더군. 이래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점심을 사리다. 여자가 졸졸 따라 오더래요. 갈빗집에 가서 돼지갈비 4인분 먹고 그 길로 모텔로 직행했다지 뭐야? 여자가 통통하고 색을 쓰는데 기가 막히더라는 거야. 몇 번을 더 만났는데 알고 보니 저 년들 하고 똑 같은 신세였더란 얘기지.”

“보나마나 신사장 얘기구먼. 얼마 전에 항남여관에 여자를 달고 가는 걸 봤어.”

박영감이 꾹 찔렀다. 사람들이 와그르르 웃었다. 신사장은 손을 훼훼 저었다.

“어어, 저 형님이 사람 잡네. 난 이래도 잡놈은 아니라오. 저런 년들 도라꾸로 실어와도 눈 깜짝 않아!”

“이봐! 신사장. 정신 차려. 저 여자들 얼마나 불쌍한가? 늙으면 자식들 덕이나 보며 편히 살지는 못해도 동사무소에 가서 생보자 신청해도 잘 안 되고 살수 없으니까 저리 기어나오는 거 아니겠나? 여기가 저 여자들에게는 생활전선이야. 신사장 같이 현금 쌓아놓고 사는 사람은 단 돈 만원이 어디 돈이야? 여관비 일만 오천원 더 투자해서 저 여자 구제해 주면 반드시 천당을 가든 극락을 가든 갈 거야.”

박영감의 소리에 모두들 또 웃었다. 그때 나이가 든 아주머니가 그들 곁으로 다가오며 노인들의 웃음소리에 장단이라도 맞추려는 듯,

“아따! 아저씨들. 날아가는 새 뭘 보았는교? 그리 웃구로?”

하고 끼어들었다. 여자는 무조건 아무에게나 손을 벌렸다. 눈치를 재빠르게 신사장이 얼른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여자에게 주었다.

“불도 주어야지. 아저씨?”

“불? 이제 시시해져서 제대로 작동도 않는데 뭐. 다른데 가 보소.”

“고장 났어? 아이고! 그 나이에 벌써 고장이야? 내가 고쳐줄게.”

여자의 소리에 남자들이 희희낙락 웃어댔다. 그런 것이다. 이제 그들은 실전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물며 돈을 들여서 될지 안 될지 불명확한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이제는 주저되었다. 직장에서만 퇴직을 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영역에서도 퇴역을 한 셈이었다. 여자를 붙들고 음담패설이나 늘어놓으라면 모를까? 여자를 산다는 것은 좀 그랬다.

하지만 역 광장에 모여드는 사내들, 그 중에 나이 지긋한 영감들이 여자들이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먹여 살리고 있었다. 언젠가 일흔이 된 늙은이들이 결혼을 했노라고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여자는 살찐 어깨를 드러낸 옷을 입고 있었고 남자는 같잖게도 젊은 척 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얼마 전 ‘죽어도 좋아’하는 영화가 나왔다지만 과연 늙은이의 성은 처지곤란인가? 최주사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 그 자리를 떴다. 여자는 어찌하든지 돈이 있을 법한 늙은이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추파를 보냈고 남자들은 별 볼일 없는 연장 걱정을 하느라 머뭇거렸다.

“참 내가 한창 때는 여자가 줄을 섰지요. 일도(一盜) 이비(二婢) 삼······· 뭣이라꼬, 남자 오입에 제일 재미난 거가 남의 마누라 훔치는 거랬지요? 꼴지가 제 여편네라고 했는데······. 그래선지 난 마누라도 시들해져서 요즘 서로 딴방 거처 합니다.”

어느새 따라 붙었는지 신사장이 최주사 뒤에서 떠들었다.

“아직 신사장이야, 나이 몇이라고 영감 흉내를 내려고 해? 박영감이나 최노인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적적 하겠어? 여자를 사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지? 그러니 침만 흘리고 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

“그럼 내가 적선을 좀 해 볼까요? 아무래도 내게서 돈 빼고 나면 물 아이겠소?”

“에에, 자존심이 있는데 신사장 신세를 지겠다고 하겠어? 그럴 생각이 있으면 돼지고기나 좀 사지?”

최주사의 현실적 접근에 신사장은 금방 손을 내저었다.

“형님도! 내가 무슨 돈이 많다고! 나 돈 없어요.”

“내 다 알아요. 연탄 장사에 쌀장사에 큰 돈 벌었다면서?”

둘은 또 다른 장기판으로 가서 장기 두는 것을 한참이나 구경했다. 장기나 바둑은 구경하는 사람들이 훈수를 해야 재미가 났다. 입이 간지러워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구경꾼들끼리 차로 포를 먹으라니, 상으로 졸을 먹고 장군을 불러야 이긴다고 시비가 벌어지곤 했다. 그러다 신사장은 최주사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아까 난리가 났거든요. 김기사가 병원에 실려 갔었는데, 처음엔 죽었지 했어요. 영결종천하는 줄 알았어요.”

“왜? 싸움이 났었어?”

신사장은 고스톱 판으로 걸어가면서 오전에 벌어졌던 일을 대강 얘기했다. 그는 고스톱에 열중한 김기사 뒤로 가서 물었다.

“김기사! 멀쩡한 걸 보니 아까 엄살이었던 모양이지?”

“누가 지랄이고? 아이고! 신사장 성님이네. 글쎄 응급실에 가 뉘여 놓으니 그만 깨어나더라꼬. 주사 한 방 맞히고 나왔어. 놈들! 강도데! 잠깐 까무러쳤는데 엑스레이 사진 찍는다, 뭐다 난리를 치는 기라. 우리가 역전에서 왔다니까 그제야 치료비 못 받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주사만 놓고 말더라꼬. 그래도 나 한 달 용돈 다 날아갔어. 재수 옴 붙었구먼.”

김기사 대신 공가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신사장에게 병원 다녀온 전말을 얘기하면서 열을 올렸다. 응급실 치료비 얼마를 낸 것 때문에 성이 잔뜩 난 모양이었다.

“영영 이별 안 한 거 다행으로 알아! 공가야. 나중에 나 좀 봐. 김기사도 따라오고!”

신사장의 말에 공가가 고개를 끄떡이며 화투짝에다 코를 박았다. 긴 여름해가 지루하게 지나갔다. 허기가 지기 시작하면 밥 때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한 끼 먹는 노인들에게는 찬물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울 것이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오색갈빗집에는 박영감과 최노인, 김기사와 공가, 그리고 최주사와 신사장 등 여러 명이 작은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신사장이 삼겹살을 사겠다고 해서였다. 그들은 소주잔을 높이 들고 다 같이 고함쳤다.

“내일, 또 보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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