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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소설

종점 -3-

by 남전 南田 2009. 8. 18.

 

하동 진교 도자기빚기 체험장

 

이 작품은 한국소설가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한국소설>(2009. 8월호, 통권121호)에 실렸다.

 

 

* 발행일 : 2009년 8월 1일

* 발행처 : 사단법인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정연희

 

단편소설

 종점(終點) -3-

 

거인인력에 그들은 주민등록증도 맡겨 놓고 또 사무실 구석에다 그들의 배낭도 처박아 두고 지냈다. 어쩌다 재수가 좋으면 일자리도 얻고 커피도 한 잔 얻어먹을 수가 있었고 사장이 인심을 쓰는 날이면 그냥 돌려 세우지 않고 컵라면을 끓여 주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둘은 서로 내색은 안했지만 일자리가 없더라도 커피나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거인인력에 들려보니 이것도 저것도 다 틀려 있었다.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어디에서고 인력 요청이 없으니 문을 아예 닫고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한성용역에 가 볼까? 혹시나······.”

“그러지 뭐. 운동 삼아 걸어보지. 한성 그 사람은 너무 빡빡하더라. 우리가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라고 깔보는 거 눈에 환히 보이지?”

“그래도 청소에 노가다 일은 그 쪽이 많아. 술씨 소주 값 한성에서 많이 벌었지 아마?”

절반은 기대로 절반은 운동 삼아 한성용역까지 다시 20여분을 걸었다. 허기가 느껴졌다. 일자리만 생기면 아침밥이야 생기겠지. 그런데 한성용역 사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일거리가 없다는 거다.

“너무 추우니까 공사판도 놀고 온실 일도 안 들어오네.”

도시 인근에는 꽃이나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온실이 많아서 그쪽에서도 일꾼을 찾곤 했다. 농사일을 하러 가면 삼시 세끼 밥에 막걸리 곁들인 중참도 두 번 주고 담배도 주고 인심 후한 농군을 만나면 버스 요금도 덤으로 얹어주곤 했다. 어쩌다 헌옷 나부랭이도 얻었다.

도로 역으로 돌아오니 역 광장에는 다 죽어 가는 노인네들이 하나 둘씩 그들의 움집에서 기어 나와 겨울 볕에 웅크리고 해바라기하고 있었다. 벌써 장기판이나 바둑판을 놓고 둘러앉은 패들도 눈에 보였다. 노인네들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대게 아침밥을 굶고 나왔을 것이다. 11시 반쯤 되어 가톨릭여성회관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설 시간까지 노인네들은 등짝에 붙은 배를 껴안고 추위에 견디려고 볕이 드는 양지쪽을 찾아 다녔다.

“여어! 형님들. 이제 오시오? 미안허요이. 나 혼자 밥을 먹어서······.”

새벽에 경찰을 따라 갔던 도박사가 짝퉁과 함께 역사 오른쪽 바람막이 벽을 등지고 서 있다가 불렀다. 철학자 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가고 그는 경찰서로 가서 아는 만큼 대답을 다 했다고 했다.

“아, 철학자가 자던 여인숙에도 조사를 갔는데 인숙이가 그러더래요. 지난밤에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 왔더랍니다.”

“아, 아니! 그 영감이 제 혼자 술을 마셔? 날 부르지도 않고!”

“허어! 술씨! 그런 게 아니고 기막힌 사연이 있었데요. 여러 달 만에 고향에다 전화를 했다지 뭐요? 팔십 노모가 계셨답니다.”

“그거 처음 듣는 소린데?”

“그런데 노모가 사는 집에는 전화가 없으니까 마을 이장 댁에다 걸었는데, 글쎄! 철학자 모친이 열흘 전에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렀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소식을 듣고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에요. 인숙이가 살살 캐물으니까 겨우 고백을 하더래요, 불효자식이라고 엉엉 울고불고 하다가 오줌을 누러 나가는지 12시가 넘어 나갔는데 소식이 없더랍니다. 아마 우리들 만나가지고 또 술을 마시나 했더랍니다.”

“그래서 얼어 죽었군.”

모두들 한참이나 제 각각 상념에 잠겨 아무 말이 없었다. 노선생은 역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그곳은 그들의 세면실이며 목욕탕이요 탈의실이기도 했다. 옷을 갈아입으려면 변소 칸을 이용했고 여름이면 한밤중에 홀랑 옷을 벗어 재끼고 목욕을 하곤 했다. 넷은 시간이 되자 무료급식소로 갔다. 벌써 그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늘어 서 있었다. 그들은 줄 끝에 서서 멍청한 시선으로 먼눈을 팔며 급식이 시작되기만 기다렸다. 짝퉁이 옷차림이 말짱한 노인을 가리키며 속닥거렸다.

“저 영감은 억대 부자라던데요?”

“여기 그런 부자 홀애비 노인네들이 많아. 옆에 여자가 없으니 누가 밥을 해 주나? 손수 밥을 하자니 귀찮지. 그러니까 하루 한 끼 이곳에 와서 해결하고 말지.”

노선생의 대답에 짝퉁은 히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지붕 있는 집이 있어 저 영감은 행복이요.”

점심을 먹는 그곳은 전쟁판이었다. 누가 쫓는 것도 아닌데 쫓기 듯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해대고 국물을 마시고 두리번거리며 밥을 좀 더 얻어먹을 수가 없을까 배식을 하고 있는 여자들을 살폈다.

오후는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장기를 두는 사람들 옆에 앉거나 서서 구경을 하거나 아니면 따스한 볕이 드는 양지쪽에 쭈그리고 앉아 오수에 잠겼다.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었다. 달라졌다면 그 자리에 앉아 관상이나 사주를 봐 줄 철학자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번개시장 도라무깡 난로에 붙박이로 소문난 말라깽이 여자는 끈덕지게 사내를 기다렸다.

“저 년은 저래 말라 비틀어져서 어디 물이나 있겠나?”

“도박사 니가 무슨 걱정이야? 저래도 속살이 쪘는지 누가 알아? 알고 싶으면 가 보라구. 인숙이 방 1만 2천원, 저년 몸값 단돈 1만원.”

“어따! 단돈 1만원? 술씨는 만 원짜리 한 장이 단돈이라네? 난 동전 한 개라도 저 년은 싫소. 여자란 모름지기 통통해야 맛이 나지, 성냥개비처럼······ 어디 들어갈 구녕이나 있을까?”

“허어! 노인네들이 그 잘난 연장으로 자주 찾는다네.”

“젠장할! 이번 주 로또도 내가 찍은 번호가 아니라니! 그래도 로또 한 장 사서 품에 안고 있으면 일주일이 행복하지요. 왕년에 경마장으로 경륜장으로 돌아 댕길 때가 최고였는데! 저런 년이 아니라 늘씬한 미녀들 속에 살았다니까.”

도박사의 말에 모두들 웃고 말았다. 도박사는 마지막 판에는 강원도 어딘가에 있는 카지노까지 갔더란다. 거기서 몰고 갔던 그랜저 승용차까지 날리고 깡통을 차고 말았다. 마누라는 돈이 좀 생겼다면 도박판으로 달려가는 남편을 더 이상 못 보겠다면서 이혼을 하자했다. 이혼을 당하고 난 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로 나앉았다.

하잘 것 없는 얘기로 열을 슬슬 올리다가 그게 심드렁해지면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신문이 아니라 구문 조각이나 주어서 읽었다. 아니면 큰 거리까지 나가 ‘교차로’ 같은 걸 여러 부 빼와서 볼 박스에 깔고 잘 준비를 했다.

해가 졌다.

역 광장에 그 많던 사내, 늙은이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노선생, 술씨, 도박사, 짝퉁 넷만 덩그러니 처졌다. 초저녁이면 으레 슈퍼에 가서 소주 한 병 사오는 것이 관례였다. 오늘은 도박사가 술을 사 왔다. 아침밥을 먹은 죄라 했다. 그때 역 광장에 눈에 익은 사내가 하나 나타났다.

“어어! 저거 망할놈 아이가? 맞지? 망할놈!”

“저 망할놈이 오늘은 웬일이야? 우릴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의리가 눈꼽만큼은 남아있는 놈이요. 안 그렇소?”

사내가 손을 먼저 흔들었다. 치켜 든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다른 손에도 뭔가 든 큰 비닐봉투가 그들의 눈에 확대되어 들어 왔다. 먹을 게 틀림없었다. 반갑게도.

“여어, 형님들! 안녕하셨소?”

“어서 오게. 동생. 그동안 잘 지냈는가?”

그들은 부둥켜안거나 악수를 하면서 반가워했다.

망할놈은 2년여 그들과 노숙생활을 함께한 50대 사내였다. 제법 큰 의류상을 했었는데 친구 보증을 잘못 섰다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떠안은 빚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도 식구들은 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그가 잘될 때는 서로 돈을 빌려 주겠다고 떠벌리던 친구나 옆 가게 상인들이 일시에 그를 외면했다. 장사 밑천이 얼마라도 있어야 포장마차라도 할 텐데 그마저 불가능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버려두고 무작정 열차를 탔다. 오다오다 보니까 종점이었다. 그는 늘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면서 “망할 놈!”을 연발했다. 그를 망하게 한 사람들을, 인정머리 없이 외면한 친구와 상인들을 망할 놈이라고 쉬지 않고 저주하고 욕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망할놈’이라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망할놈은 거인인력이나 한성용역을 다니며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공사장으로 일하러 갔다가 망할놈은 운수대통했다. 고향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초등학교 선배였는데 아파트 공사장의 현장소장이었다. 당장 그는 공사장 경비로 일하게 되면서 그곳 현장의 식당에서 밥 먹고 잠자고 일당은 차곡차곡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여 지났는데 정이 두터운 사람이라 간혹 소주병에 돼지고기를 사들고서 종종 대한통운 창고로 오곤 했다.

“오늘 족발과 소주를 넉넉하게 사 왔으니 인숙이에게 갑시다. 철학자 형님 방에 가서 한 잔 하면 어때요? 날씨도 추운데 한데 있기도 뭐하고······ 적당하게 인숙이 구워삶으면 거기서 잘 수 있고 말입니다.”

망할놈의 소리에 모두들 할 말을 잃고 있다가 노선생이 걸음을 옮겼다.

“가세. 주인 없는 방인데 우리가 저승길 지켜 주는 셈치고 밤샘 한번 해보지.”

이상한 낌새를 금방 눈치를 채고 망할놈이 두리번거리자 그제야 술씨가 철학자의 죽음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빈소를 지키는 심정으로 철학자가 살았던 방에서 밤샘을 하며 극락왕생을 빌자고 여인숙으로 갔다. 여인숙을 지키는 여자는 술씨를 좋아했다. 그러나 술씨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니까 심통이 나서 언제나 싸움을 걸어오곤 했다.

“방 없소.” 여자는 퉁명스러웠다.

“허어! 우리 오늘 철학자 문상 온 거야. 살아생전 제일 친했던 사람이라면 우리 아닌가? 우리 그 방에서 마지막 극락왕생이나 기도하러 온 거야.”

“벌써 그 양반 짐을 싹 치워버렸는데!”

여자가 그러든 말든 그들은 철학자가 살았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그대로였다. 노선생과 술씨는 간혹 이방에서 신세를 지곤 했다. 술을 얻어먹다 보면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자기 보통이었다. 그럴 때 술씨는 노선생 모르게 인숙이 방에 가서 자곤 했다. 망할놈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장사를 시작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송별연이기도 했다.

“그 사이 모은 돈으로 싸구려 옷 장사라도 해야겠어요.”

“장하구먼. 장 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술에 취해버렸다. 저녁을 먹지 않은 속이라 빨리 취했다. 노선생은 철학자도 죽고 망할놈도 가족 곁으로 간다는 말에 너무나 슬프고 괴로웠다. 그래서 이때껏 함구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얘기를 털어 놓고 말았다.

“난 말이야. 선생 맞아. 어느 시골 작은 중학교의 사회 선생이었지. 철학자가 신세 조진 게 뭐였지? 그냥 지냈으면 도량 높으신 스님으로 대접받으면서 살았을 껄 잠시 잠간 그걸 못 참고······, 나도 마찬가지야. 담임을 맡은 우리 반에 예쁘장한 여학생이 있었지. 날 좋아했지. 방실방실 웃어대며 재롱을 떠는데 나도 귀여워했지. 어쩌다 어깨인가 가슴인가 손이 스치고 안았는데······. 그 앨 성추행했다고 학생들 사이에 쫙 퍼지고 말았지. 급기야 동료교사들도 알게 되었고, 학부모들에게까지 담임선생이 제자를 어떻게 했다는 소문이 과장되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고 말았지. 교내에 큰 파문이 일어났어. 해명을 하기에도 난 부끄러웠어. 동료, 학생들에게······. 사표를 냈지. 마누라 자식들 보기에도 부끄러워 집에도 들리지 않고 그 길로 기차를 탔어. 서울역에서 얼마를 지내다가 그 다음에는 영등포나 수원역에서 그러다 천안에서 또 대전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떠돌다 드디어 여기 종점에 온 거야. 망할놈! 넌 정말 잘 했어. 집으로 가는 거 말이야! 여긴 종점이기도 하기만 다시 출발하는 역이기도 하거든.”  ****

 

(한국소설 2009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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