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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소설

씁쓸함에 대하여

by 남전 南田 2009. 12. 18.

 단편소설

씁쓸함에 대하여

                                                                                                                                                김 현 우

 

 창녕문학(33집`2009)에 실었던 소설이다.

 

그 해 여름, 유 화백 집 울타리에는 능소화(凌霄花) 가지가 길 쪽으로 휘어진 채 무더기로 무더기로 피어났다. 그는 마루에 앉아 능소화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마다 한두 가지쯤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었지만 세월은 가고 그리움으로 한평생 남기 마련인 경우가 많다. 유태승 화백에게도 그리움으로 남은 여인이 있었다. 아릿한 그리움 때문에 꼭 한 번쯤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전연 노력을 않은 채 60대 중반이 넘도록 살아왔다.

그런데 그 여인과 아직 질긴 인연의 끈이 남았든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기적이었다.

유 화백은 초등학교 준교사 자격 검정을 거쳐 선생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60년대 중반기에 첫 발령을 받아 간 임지가 합천 야로의 깊고 깊은 산골짜기 학교였다. 마침 교장이 그가 화가임을 알아보았다.

“그림이 국전에 입선하였다면서? 동양화 그리는 선생님이 오시다니! 반갑네.”

그러나 수업 하랴 학교 잡무 처리하랴 쩔쩔 매니 그림 공부는 뒷전이었다. 거기다 천성이 내성적이고 유약(柔弱)하니 그림 그리기에도 힘이 부쳤다. 그 이후 그의 그림 실력은 제자리를 맴돌고 말아 명성을 드날리지는 못했다.

그가 그림에 입문한 것은 모교인 고등학교의 미술 교사였던 중학교 선배의 보살핌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 솜씨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 그 선배가 권해 그림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림 공부를 위한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농사를 짓던 가난했던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고 그러다 지치면 읍내 마을을 정처 없이 한 바퀴 도는 게 그때 그의 버릇이 되었다.

1960년대 초 어느 해 여름, 그는 붉은 듯도 하고 옅은 노란빛도 도는 꽃들이 울타리에 가득 핀 골목을 지나치게 되었다. 멈추어 서서 자세히 보니 꽃잎의 안쪽은 분홍인데 뒤쪽은 노랑이었고 다섯 개의 꽃잎은 넓고 둥글었다. 촘촘히 달린 푸른 잎사귀에 비해 꽃은 제법 크게 보였다.

“이게 무슨 꽃인가? 무궁화처럼 꽃이 크네.”

그는 울타리 앞에 멈추어 서서 올려다보았다. 꽃은 휘어져 내린 가지 끝에서 계속 피어나고 있었다. 넙적넙적한 꽃잎, 포도나 등나무 줄기 같은 덩굴인데 그 가지 끝에 꽃이 한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연필과 종이를 꺼내 꽃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뭐 해요?”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조그맣게 여자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 왔다. 미처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어머! 그림 그리네.” 하고 자못 놀란 듯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때서야 고개를 돌려보니 웃을까 말까 망설이는 듯 부끄러운 듯 한 얼굴이 바로 뒤에 있었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어?” 하며 그는 급히 일어났다. 갑자기 여자가 나타난 것에 놀라고 당황해서.

“이, 이 꽃 이름이 뭡니까?”

무심코 튀어나온 첫마디치고는 사뭇 사무적인 투라고 생각 들었지만 그는 꽃 이름을 물으면서 처녀를 바라보았다. 둥글넓적한 얼굴, 발그레한 뺨과 동글동글한 큰 눈에 문뜩 울타리의 꽃과 너무나 닮았다고 느껴졌다.

“거기, 누가 왔어? 정화야.”

기침 소리와 함께 대문 안에서 또 다른 얼굴 하나가 나타나 처녀 뒤에 섰다. 병색이 검게 짙은 얼굴이었다. 오랜 병상 생활에 지치고 지친 표정이었다. 그는 그 얼굴을 보자 깜짝 놀랐다.

“어? 선생님. 선생님 댁이었군요. 저 잘 모르겠어요? 유태승, 선생님께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화포국민학교 5학년일 때 저는 2반이었어요. 선생님은 1반 담임 선생님이었구요.”

“그, 그랬나? 언뜻 못 알아 봐서 미안하이.”

“아, 아닙니다. 벌써 십 년도 넘었는걸요. 이 댁에 선생님께서 사시는 줄 몰랐습니다.”

“요새는 몸이 아파서 학교에 못나가고 쉬고 있어. 술을 많이 먹어서 생긴 술병이지 뭐. 그런데 무슨 일이지?”

“아, 아네요. 울타리에 있는 저 꽃이 하도 예뻐서····· 꽃 이름이 뭔지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케치한 그림을 뒤로 감추며 다시 정화라 불린 처녀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꽃과 그리 닮았을까? 다시 탄복하면서. 홍조 띈 둥글넓적한 얼굴이 급히 아버지 뒤로 사라지면서,

“아버지, 꽃 이름이 뭐랬어요? 무슨 소화라 했던데?” 하는 소리가 들렸다.

“능소화다. 능소화. 이 꽃은 우리 경남 지방에 유독 많지. 전라도나 경기도 같은 데서는 볼 수 없어. 충청도에 간혹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만 잘 모르겠고, 유독 경남에만 많지. 이 꽃은 흔히 절에서 많이 심어 놨는데 몇 년 전에 함안에 있는 관음사에 갔다가 스님 몰래 가지 하날 꺾어와 삽목을 했더니 아, 이게 잘 자라지 뭐야. 꽃이 피기 시작한 지 여러 해 됐어.”

“능소화···· 꽃 이름 한번 뭔가 부드럽고 사연이 많을 듯도 하네요.”

“유태승? 유군! 들어오게. 선생님 집에 왔으니 그냥 지나치면 안 되지. 얘, 정화야, 거 단술이라도 내 오너라.”

홍 선생은 그를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간경화란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홍 선생은 심심하고 말벗이 없던 차에 잘 되었다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늘어 놨다. 자주 놀러 오라고 당부했다.

그 이후 그는 능소화를 닮은 정화를 보러 자주 홍 선생 댁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그는 정화에게 마음이 쏠렸다. 정화도 그림 공부를 한다는 그에게 관심이 많아보였다. 곧잘 스케치를 위해 가까운 절이나 낙동강변의 모래사장이나 절벽으로 그가 간다면 같이 따라 나서곤 했다. 단 둘이 걸어 갈 때는 슬며시 손을 내밀어 보기도 했지만 그녀의 손을 잡는데도 여러 달이 걸렸다. 성격이 내성적인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을까 말까하고 주저하고 고민하다가 막상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을 했지만 지체하거나 포기하는 적이 많았다. 여자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다가 손을 먼저 내민 쪽은 정화였다. 도랑을 건너면서 훌쩍 뛰기에 힘들었던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자가 위험한 듯 하면 손을 잡아 줘도 될 텐데·······.”

“참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네. 마산 나갈 시간 있어?”

“마산은 왜요?”

“마산 가서 영화라도 하나 보았으면 해서·······. 마산의 극장은 화면도 크고 참 좋다 하던데?”

태승은 자의든 타의든 어찌되었든 간에 여자의 손을 잡고 나서야 용기를 내 벼르고 벼르던 말을 꺼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하자 변변한 수입이 없는 그로서는 이웃에 사는 사촌 형에게 마산 다녀올 차비와 영화관 입장료를 빌렸다.

“형님, 고맙습니더. 내 꼭 국전에 입상하는 성공을 하게 되면 형님께 큰 선물 할게요.”

“우짜든지 니가 알아서 해라. 그림 가지고 어디 밥 먹고 살겠나? 어디든지 취직을 해야제. 공무원이 제일 좋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전교에서 3등했다민서? 그 정도 니 실력이면 면사무소 서기 시험 같은 거는 문제 안 없겠나?”

사촌 형님은 그를 만났다 하면 면서기나 경찰 시험을 봐서 면서기든 경찰이든 취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 평화와 안락이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정화를 만나면,

“난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릴거야. 그게 사람 사는 멋이 있는 걸 꺼야. 사실 각박한 현실에 농촌은 얼마나 인심이 후하고 니 것 내 것 없이 서로 터놓고 살지 않아?”

하고 이야기 하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그럼,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나물먹고 물마시고 그래 살겠네? 누군지 모르지만 고생하게 생겼네? 평생 농사일에 뼈가 빠지면서 시어머니 봉양하게 되면 제대로 한번 허리 펴고 살겠나?”

“허어! 무슨 말이고? 이해가 그리 안 돼? 농사를 지으면 내가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 그리며 자연과 함께 여유 있게 자유롭게 살 수 있어. 그렇게 산다면 내 한평생 행복할 거 같아.”

“아이고! 선생님. 아무도 시집 안 올라 해요. 그만 떠들어요.”

“와? 내가 틀린 말 했나?”

“농촌 생활 그걸 좋아 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아세요.”

“아, 설득을 시켜야지 뭐. 농촌이 어떤 곳이라고. 도시가 사람 살 곳이겄나? 복잡하고 정신이 없어서······.”

정화와의 대화는 그 정도에서 그쳤지만 그는 면서기 경찰보다는 그림을 그리며 농사를 지으며 촌놈으로 이름 없는 화가로 유유자적 살겠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게 탈이었을까? 그로서는 거금(巨金)을 들여 마산까지 나가 그녀와 영화를 보고 왔지만 그 이후 정화가 점점 쌀쌀해 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그는 잘 몰랐다. 정말 어리석고 자기 편의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심심하면 홍 선생 댁을 찾아가 홍 선생과 얘기하기를 즐겼다. 물론 그 집 식구들 누구도 그가 오는 걸 싫어하거나 꺼리는 기색은 전연 없었다. 어쩌면 그것도 그가 둔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데 서툴렀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정화의 어색한 냉담이나 사모님의 무덤덤한 태도를 그가 너무 자주 들리다보니 자연히 한 집 식구처럼 대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식구들 몰래 그와 영화구경을 갔으니 어색해 하는 지도 모른다고 짐작을 하기도 했지만.

전과 같이 함께 강변을 걷자고 제의해 보면 어떨 적에는 따라 나서기도 하고 어떨 적에는 적당한 핑계를 대며 나가려 하지 않았다.

“또 마산 영화 보러 갈래?”

“뭐, 좋은 영화 들어 왔데요? 요새 내 뭐 배우거든. 나도 그냥 집에 놀 수만 없어서 부산에 취직하러 갈 작정이야.”

“부산에 취직?”

“미용사 같은 거 말이야. 자격증만 따면 나중에 돌아와 이곳에 미장원을 차릴 수도 있지. 그러니까 미장원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데. 순 손재주로 벌어먹고 사는 게 미용사들이레. 누굴 통해서 부산에 갈 자리를 알아보고 있어.”

그 소리를 듣고 돌아 온 태승은 고민에 빠졌다. 부산으로 나가 미용 기술을 배우고 돌아 와 그와 결혼을 하고 미장원을 차리겠다는 생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타향으로 떠난다는 데 불안해졌다. 그녀를 붙들어야 한다,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한층 굳어졌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그에게 용기가 없었다.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여자이면서도 막상 정화의 면전에서 청혼하기에는 쑥스럽고 부끄럽고 덜덜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고민 고민 끝에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그 아주머니는 홍 선생 사모님과 절친한 친구로 곧잘 홍 선생 집에서 그와 부딪치고 해서 그가 정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여자였다.

“잘 될 같다. 평소 너희들 둘이서 자주 놀러 댕긴다면서? 그라면 내가 중신애미 노릇해볼까?”

아주머니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선뜻 그의 부탁을 받아 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영 소식이 없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를 물어 볼까 말까 망설이기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그는 아주머니를 찾았다. 아주머니는 첫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너희들 둘이서 약속이 안 되어 있었더나? 정화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모로 틀고 말이 없고 그 어매는 전연 생각이 없드마는······. 중신이라는 기 성사되면 좋지만 파이가 되면 그리 쑥스럽고 부끄러운 것이란 말이 예전부터 있었지만도 태승이 니가 그 집에 자주 놀러 댕기고 해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줄 알았제.”

그는 더 이상 아주머니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하고 분했다. 거절당하고 난 그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해결할 방도가 그에게는 전연 없었다. 당당하게 찾아가 ‘사위가 되겠소.’ 하고 밀어붙일 뻔뻔함도 아니면 정화를 붙들고 내 사랑을 받아 달라고 애원할 용기마저 없었다. 두 번 다시 정화의 의사를 확인할 길이 막연했다. 거절을 당한 마당에 낯을 쳐들고 홍 선생 댁에 갈수 없었다. 몇 번인가 집근처를 떠돌며 혹시 정화가 나올까 망을 보기도 했다. 집집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전화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홍 선생이 끝내 돌아 가셨다고 했다. 청혼이 거절된 그 해 겨울이었다. 또 소문을 듣자니 정화가 벌써 가을부터 부산으로 가 취직이 되어 떠났다고 했다. 홍 선생이 돌아가신 것도 정화가 부산으로 떠난 것도 다 늦게 소문을 들었으니 문상도 재회도 할 수조차 없었다.

정화와의 소식이 끊긴 지 여러 달이 흘렀다. 그 사이 그는 국전에 입상했다. 동양화가로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그 덕분이었는지 마산에서 제법 유명한 호텔에 장식할 그림 주문이 여럿 들어 왔다. 그 당시에만 해도 화실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림 재료를 대 주던 업자의 도움으로 적지 않는 첫 수입이 생겨 조금은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다.

홍 선생 집 울타리에 또 능소화가 가득 피었을 여름쯤에 그는 정화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도시에서의 생활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미장원에 취직을 했으나 주인이라는 여자가 쉽게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으며 자격증 시험도 일 년에 한 두 차례 있는데 일이 바빠서 실기(失期)하기 쉽다고 했다. 또 시험을 쳐보니 실력이 미달되어선지 정말 줄이 없어서인지 떨어져 낙담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구석에도 전에 당신이 청혼했는데 왜 거절했는지 적어 놓지 않았다. 그러나 행간에서 그는 그녀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꼭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부산이란 거대한 도시의 한 시민으로 살아남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었다. 농촌에서 팔리지 않을 그림을 그리며 가난하게 살려는 얼빠진 사내와는 아예 취미가 없다는 듯 했다.

그는 또 여러 날을 고민했다. 이제 저 도탄에 빠진 백성, 아니 허망한 도시 허영에 물든 여자를 구하러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줌의 모래를 금덩이로 착각하고 그것을 악착같이 차지하려 애쓰는 정화가 불상하고 가여웠다. 그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가서 구해오자! 온갖 오물을 덮어쓰고 허우적거리며 버둥대는 정화를 구해 오자!”

그는 마산 화구점에 들려 얼마의 그림 값을 받아 쥐고 부산으로 갔다. 저녁 늦게야 부산에 당도하여 편지 주소를 보고서 광복동 어딘가에 있다는 미장원을 찾아 갔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걸어 미장원 앞에 갔지만 또 그는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유부단하게 한참동안 그 집 앞을 오가며 망설거렸다. 지나가며 살펴보았으나 정화와 비슷한 모습의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집을 잘못 찾아 온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편지 봉투를 꺼내 주소와 미장원 이름을 확인하니 틀림이 없었다. 몇 번인가 왔다 갔다 하다가 큰마음을 먹고 미장원 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주인 마담과 손님인 여자들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는 청년을 보고 ‘웬 일로 왔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혹시······저어 여기 홍······정화, 정화라꼬 하는 처녀 있능교?”

주인 마담이 쉽게 대답을 않고 그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정화 고향에서 온 사람이라 하자 그제야 옆에서 일을 거들던 처녀에게 고함을 쳤다.

“미쓰 홍 나와 보라 캐라. 아침부터 아프다꼬 싸매고 누웠더니, 인자 고향에서 오래비 왔으닝께 일어나 나오겠지!”

여자의 말에 처녀가 쪼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엉거주춤 하고 미장원 문 앞에 서 있었다. 주인마담은 그에게 앉으란 말도 않았다. 영 생김새나 해 입고 온 옷 꼬라지를 보니 농촌에서 땅만 파먹고 사는 지렁이나 굼벵이 같았던 모양이었다. 한참 그러고 섰노라니 머리가 헝클어진 그대로 부수수한 얼굴의 정화가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그를 다짜고짜 끌고 미장원 밖으로 나갔다.

“우째 된 일입니꺼?”

“우째 되기는 우째 돼? 편지 받고 고민 고민 끝에 내 널 데불고 갈라꼬 왔다.”

촉수 낮은 전등을 컨 어두컴컴한 국밥집에 마주 앉자 정화는 반갑다는 말은 없고 짜증부터 내면서 칭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정화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국전에 입상하여 이제 떳떳하게 동양화가가 되었다고, 작품도 몇 점 팔아서 큰돈은 아니지만 적잖은 돈도 만지게 되었다고 은근히 알아듣게 설득했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단호하고 냉담했다.

“뭐 하러 왔어? 난 지금 미용사 자격시험을 봐 놨어. 이번엔 꼭 합격할 거야. 그리고 서면에 있는 미장원으로 옮길 거야. 지금 당장 오라고 저쪽에서 얘기하는데 이 곳 마담이 붙들고 놓아 주기 않는 거야. 월급도 서 푼밖에 주지 않으면서.”

“아, 내 마음대로 가고 싶고 일 하고 싶은데 가는 게 자유인데 누가 그 자유를 막아? 마담이 무슨 독재자 뽄을 봤나?”

“내가 가려는 미장원은 아주 크고 미용사들도 여러 명이야. 그런데 내가 빚이 조금 있거든. 자격증 시험 때문에 재료비도 들었고 학원도 다니려니까 등록비랑·····마담에게 돈을 빌렸어. 그걸 갚아야 보내 주겠다고 하면서 날 붙들고 부려먹으면서······.”

“그, 그럴 수가 있나? 저 쪽 미장원가서 월급 받아 갚으면 되지, 어디 도망을 가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놓아주지 않아?”

“아이고, 여기 인심이 얼마나 야박한데! 제 것 없으면 하루도 못사는 세상이에요. 그 빚만 없으면 오늘 밤이라도 서면 미장원으로 갈 텐데. 여기는 일도 고되고 월급이 너무 적거든.”

그 말에 그는 호주머니에 든 돈을 생각했다. 주인에게 빌린 돈이 얼만지 모르지만 아까 화구상에게서 받은 그림 값이 있으니 호기를 부렸다. 정화가 빚에 얽매여 붙잡혀 있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고 그것을 안 다음에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서면 미장원으로 당장 옮겨! 내가 그 빚 지금 당장 갚아 줄게.”

국밥을 먹다말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화가 붙잡을 틈을 주지 않고 주저 없이 미장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주인 마담을 뒤쪽으로 불러내 만났다. 정화가 빚이 있다던데 얼마냐고 그것을 지금 당장 갚아 줄 테니 정화를 제 마음대로 가게 해 주라고 했다. 주인 마담도 선뜻 빚이 얼마인데 그것만 갚아주면 지금 당장 정화가 서면으로 가든 고향으로 가든 말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마담에게 주었다. 마담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쓰게 해 받아 쥐었다. 혹시 뒷날 또 정화에게 빚 갚으라고 할까봐. 정화는 말없이 그런 실랑이를 지켜보다가 짐을 챙겨 넣은 가방을 들고 순순히 그를 따라 미장원을 나섰다. 늦은 시간이라 서면 미장원까지 찾아갈 형편이 아니었다. 둘이서 근처 여관을 찾아 들었다.

어색하게 한 방에 들어 가보니 이부자리가 한 채라 부득불 등을 맞대고 누워 자야 할 형편이었다. 멋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잠을 청했다. 정화에게 슬슬 다가가서 손이라도 잡아보고 잘 된다면 더 잘된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아무런 시도를 못해보고 밤을 보냈다. 정화 쪽에서는 더 굳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듯해서 밀린 얘기도 변변히 못해 보고 말았다. 바보스럽고 천치 같았고 음흉한 생각만 가득했지 실행에 옮겨보지 못하는 무능한 자라고 스스로 인정한 채 여자를 어쩌지 못하고 고스란히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정화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같이 가자고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기만 했다.

“이제 자격증을 따면 나도 어엿한 미용사인데 월급도 많이 받게 돼. 그런데 고향에 가면 어떡해? 난 농사만 짓고 그림만 그리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얼만가 더 실랑이를 했지만 그에게 더욱 낭패감만 안겨 주었다. 결국 그는 시외버스에 오르고 그녀는 서면에 있다는 미장원을 향해 가버렸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돌아와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영화나 보자 싶어 극장에 갔다. 전에 정화함께 갔던 곳이었다. 개봉된 지 좀 오래된 “마음의 행로”란 영화를 돌리고 있었다.

영화는 ‘세계1차 대전 때 전쟁 중 부상을 입어 기억상실증에 걸린 부잣집 아들인 남 주인공 찰스는 종전 되던 날 안개 낀 정신병원을 빠져나와 술집에서 만난 댄서 여 주인공 폴라와 결혼한다. 그러나 찰스가 도시로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본래의 정신을 되찾는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의 행적은 기억하지 못한다. 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가로 정치가로 성공하고, 한편 남편을 찾아 폴라는 우여곡절 끝에 찰스의 비서로 일하게 되는데 한 남자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폴라는 남편의 가난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되찾아 주려고 여러 해 애쓰다 지쳐서 예전의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찰스는 어느 날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해 지역구에 갔다가 뭔가에 이끌려 마을길을 따라 언제가 와 본 듯한 집에 이른다. 항상 갖고 다니던 열쇠로 현관문을 여는 순간 폴라가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는 줄거리였다.

한평생 지녔던 마음 속 그리움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태승은 3년간 과거를 찾을 단서는 호주머니속의 열쇠뿐이라 고민하던 찰스가 그 열쇠로 아내를 찾아가는 과정은 환상적이라 잊히지 않았다.

이별은 길었다. 집으로 돌아와 어찌어찌 결혼을 하고서 그림만 그려서는 식구들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느끼고 초등학교 준교사 모집 시험에 응시하여 합천 오지에 갈 때 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띄엄띄엄 들려오는 소식에 정화도 소원대로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서울인가 어딘가로 가 잘 산다고 했다. 그 집 식구들도 모두 딸 따라 아들 따라 어디론가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뭐 남은 미련이야 없었지만 괜히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정화를 생각하고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또 정화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보았던 영화 ‘마음에 행로’ 처럼 예전의 마음을 찾아 정화가 언젠가 그에게 돌아와 주리라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얼마 전 받은 중학교 동창회 명부에서 그는 정화 동생의 주소를 우연히 찾아냈다. 그는 문득 정화의 근황이 궁금했다. 주소도 있고 전화번호도 있으니 정화 동생에게 연락을 해 보면 틀림없이 무슨 소득이 있을 듯 했다. 그런데 느려터진 그 성격이 어디 갈까? 몇 년 전에 정년퇴직하고 아무 할 일이 없어져 그림만 그리며 놀고 있는 판임에도 선뜻 정화 동생에게 전화를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갖은 개인전이 떠올랐다. 개인전을 위해 전시 작품을 실은 펨프릿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주소록에 있는 그 곳으로 전시 도록을 우송했다.

연락은 금방 왔다. 마침 누나도 왔다가 유 화백의 그림들이 실린 책을 보고는 반가워하더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누나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했다. 저쪽에서 그를 확인하자 반가워했다. 서로 안부를 사는 형편을 주고받았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정년퇴직 했으며 이제는 자그만 화실 하나 열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얘길 했다.

“난 폭삭 늙었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 쪽은 변한 게 없던데?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하나도 육십 대 후반 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어.”

“말도 하지마소. 나도 폭삭 늙었어요.”

“아녜요. 책에 나와 있던 사진이 정말 젊어 보였어요.”

자꾸 그런 얘기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싶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황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도 자꾸 그가 세월보다도 늙지 않았다고 하는 얘기만 했다. 한참 그러다가 그는 단호하게 제의했다.

“아! 우리 한 번 만나보면 어떻겠소? 마침 내가 화가들 단체의 행사가 있어서 서울 가려고 했는데 정화 씨가 사는 김포 그쪽에 갈 시간을 만들어 보지요.”

저쪽에서도 그 말에 반색을 했다. 동생들이나 어머니가 다 김포 근처에 살고 있으니 오기만 하면 동생과 함께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또 영감에게도 얘기를 했는데 반가워하더라고 했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서울 가면 꼭 연락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도 서울 오면 꼭 김포로 오라고 했다. 그러면 꼭 맛있는 음식점에 가 한 턱을 동생과 함께 내겠다고 했다. 너무나 고맙고 즐거운 응답이었다. 기대이상 이었다.

곧 미술 단체의 행사가 서울에서 있었다. 그는 소품 그림 두 점을 싸들고 서울로 갔다. 행사 참석보다는 정화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뛰어 기대감에 벅찼다. 행사가 그럭저럭 끝나자 김포로 달려갔다. 김포에 가기 전 연락을 해 봤으면 좋았지만 늙은 여자가 어디 할 일이나 있을까? 전화 연락하면 곧 만날 수 있겠지 막연히 생각하고서 김포 시내에 도착해서야 핸드폰으로 정화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았으므로 신호가 곧 갔다. 그런데 한참 신호가 가도 저쪽에서 받지 않았다. 다시 또 신호를 보냈다.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여간 다른 전화번호를 모른 채 달랑 휴대폰 전화번호 하나만 믿고 별다른 준비 없이 간 것이 탈이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 동창생 명부를 보기 전에는 다른 연락처를 알 수가 없었다.

신호가 계속 가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요즘 광고 전화가 판치는 바람에 내가 알지 못하는 전화번호가 뜨면 아예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또 저장해 둔 번호가 뜰지라도 전화 받기 곤란한 사람이면 “신호야 울려라!” 하고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쪽으로 신호가 계속 가는데도 받지 않으니 틀림없이 그 둘 중 한 경우가 분명했다. 기가 막혀 길가 그늘에 서서 한동안 멍청하게 서 있었다. 다시 신호를 보낼까 말까 고심하다가, ‘이제 마지막이다. 이번에 받지 않으면 가자!’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신호를 보냈다.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는 처량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지난번 그녀도 반가워서 앞뒤 가늠 없이 그에게 연락을 했겠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그를 만나볼 면목이 없어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이나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 어려운 시기에 그 당시 화폐 가치로 치면 큰돈이랄 수 있는 빚을 갚아 주었는데도 그에게 한 번도 고맙다고 한 적이 없었으니 이제 와서 무슨 체면으로 그 앞에 설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정화가 뻔히 그의 전화임에도 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졌다.

휘돌아 오는 무더운 바람이 그에게는 12월 찬바람 같이 느껴져 한기가 들었다. 아니 가슴 한 구석이 텅비어버리는 쓸쓸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젊으니까!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

그때 지나가는 아가씨 둘이 주고받는 말이 그의 귀에 들렸다. 순간 그도 속으로,

“맞다! 난 늙었으니까!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지 뭐!”

했다. 그러면서도 또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저 아가씨들이야 젊었으니까 앞으로 살날이 구만리 장천 같으니 실패를 했건 배신을 당했건 여하간 그 좋은 경험을 활용할 기회가 있을 테지. 허지만 나 같이 죽을 날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를 늙은이이야 아무리 좋은 경험을 했다하더라도 미래 어디에 어떻게 써 먹는 단 말인가? 만사 휴이지.”

유 화백은 그만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니 맥이 빠진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다. 무겁고 휘청거리고 몸이 흔들렸다. 술도 먹지 않았는데 술 취한 사람처럼 그는 건들건들 비척거리면서 마산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로 아무 날 아무 시에 서울에 갔더란 간단한 쪽지와 김포까지 들고 갔던 그림을 우편으로 부쳤다. 물론 휴대폰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더라고 짧게 사족을 달았다. 그의 그림이 그녀에게 도착했던지 사나흘 후에 전화가 왔다.

“요즘 손녀를 키우느라 휴대폰은 서랍에 늘 넣어 놓고 지내요. 그래서 전화 벨 소리를 못 들었나 봐요.”

“아아! 그랬구나!”

그는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고 싶을 만큼 낭패스러웠다는 얘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다음에 올라오면 꼭 연락해요. 우리 영감이 유 선생이 오시면 자기 차에 모시고 김포 구경을 시켜 드린 데요.”

어느 새 그녀는 약아빠지고 빤들빤들 닳아빠진 서울 여자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씁쓸한 맛이었다. 그렇게 참담한 느낌도 창피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쓰잘 데 없는 일에 너무 흥분했던 게 아닐까 자책하면 할수록 씁쓸해 졌다. 결코 쓸쓸한 게 아니라······.

능소화가 울타리에 무더기로 피어나는 이 여름에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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