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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소설

쑥쟁이 흐튼소리

by 남전 南田 2009. 12. 23.

(이 소설은 2009 경남펜문학에 수록된 졸작입니다)

단편소설

쑥쟁이 허튼소리

김 현 우

 

 

옛날 나무꾼이 나무를 한 짐 해서 장에 팔러 갔다. 그런데 나무를 사러 여인네가 오니까 나무꾼이 한다는 소리가 요령부득이었겠다.

“아주머니, 나무 한 짐에 2원인데 쑥 넣으면 5전 더 받고 쑥 빼면 2원이요.”

말귀를 얼른 못 알아들은 여인네가 되물었겠다.

“쑥 넣으면 5전이라니요? 나무단 속에 쑥이 들어 있어요?”

“그래, 쑥 넣을까요? 쑥 뺄까요?”

늙으나 젊으나 음담패설 이라면 일단 웃고 보는데 당하는 여자는 황당할 따름이었겠지.

장덕호의 입담에 웃지 않는 여자가 없었다. 그래서 젊었을 때 자주 나갔던 댄스홀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쑥쟁이라 불렀다. 여자들 사이에 인기가 드높았다. 보통 쑥쟁이 뱃놀이에 걸려들지 않은 여자가 도리어 이상한 지경이 되어 너도 나도 당하고 나서야 과연 그의 진가를 깨달을 수 가 있었다는 전설 같지 않은 얘기가 여자들 입에서 입으로 공공연히 떠돌았을 정도였다.

장덕호의 여자 다루기는 그의 직업에서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그는 사진사였다. 신마산에 신신사진관이란 간판을 단 사진관 문을 열어 놓은 직업 사진사였다. 요즘과는 달리 196, 70년대는 디지털 사진이 아니라 아날로그 시대라 몸 뭉치 큰 카메라를 메고 길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이 우러러볼 정도였던 그 시절에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 절정의 사나이로 통했다.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멋쟁이로 소문이 났고 여자들은 장덕호의 감언이설에 녹아 너도나도 은밀한 곳에 가서 알몸 자랑을 했으며 그는 나체 사진을 찍어주고 두둑한 팁에 여자가 원한다면 화끈한 고추 맛도 보여주었다. 사진관 인근 다방 아가씨들이 보통 달마다 얼굴이 바뀌는데 그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나체사진을 다 찍어서 조충대에게 보여 주어서 놀라게 했다.

“뭐? 사람들이 우러러봐? 공갈을 쳐도 좀 박자에 맞게 쳐라. 사진기 울러 메고 다니며 폼을 잡았겠지만 장덕호 네 놈에게 넘어간 여자가 어딨어? 순전히 춤을 추네 어쩌네 댄스홀에 다니면서 뱃놀이에 넘어 갔지. 정신 빠진 여편네들이!”

“어어! 충대! 너 또 오늘도 날 물 먹일 소릴 할래? 박 사장, 죽마고우에 같은 고향 친구끼리 사사건건 비꼬고 물고 늘어지는 저 친구······ 성질 한 번 고약하지요?”

왕년의 사진사이며 자칭 쑥쟁이 뱃놀이에 인기가 있었다며 떠드는 장덕호, 그 말에 박자를 맞추듯 비꼬며 한 마디도 쓸 말도 들을 말도 없다는 그의 친구 조충대, 그들 말대로 같은 고향에 초등학교 동창인 둘 사이에 끼어 흥미롭게 얘기를 듣는 쪽은 언제나 박 사장이었다. 그들은 모두 마산역 광장에서 나와 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노년의 지루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누구는 그들을 갈 곳 없는 늙은이라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만 그들 자신은 그런 시선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에게 역전 광장은 다방이요 노인정이요 단골 술집이거나 포장마차 같은 곳이었다. 약속 없이 나가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일부러 격식을 차리며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몇 마디 대화에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곳이 그곳이었다. 조충대와 장덕호는 초등학교 동창이니 오래된 친구였지만 박 사장은 2년전 이 역전에서 만나 친하게 된 사이였다.

“내가 왜 사진관 시절 얘길 하냐고 하면 그때 인기나 지금 인기나 여전하다는 소릴 하려고 하는 거야. 빌빌거리는 충대 너는 잘 이해가 안 가는 소리겠지만 나 요즘 중신이 자꾸 들어와서 고민이라니까. 내가 재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허어! 또 그 소리! 어떤 여자가 늙어빠진 널 좋아하겠냐? 다아, 네 놈 재산보고 덤비는 거 아니겠어? 헛소리지.”

“허튼소리가 아냐. 나 어제 이발관에 갔다가 가발을 주문하고 왔어. 내 머리 장배기에 머리칼이 너무 빠져 보기가 흉하거든. 염색을 하면서 이발사가 그러는데 염색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발을 쓰면 한 열 살 정도는 더 젊어 보일꺼라고 권하던 걸. 모자 쓰고 다니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거든.”

“그래서 가발을 맞추었단 말이지? 에라이! 나이 70이 다 되어 가는 사내가 염색에 가발이라? 가관이네, 가관이야. 또 어떤 여자가 꼬리를 치더노? 네 병은 죽어야 고쳐지는 병이다. 네 놈은 굶어도 엉덩방아 맛으로 산다더니!”

가발을 주문했다는 장덕호의 말에 조충대는 열을 올렸다. 보나마나 또 어떤 여자와 뱃놀이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게 틀림없다고 충대는 짐작을 하면서. 그러나 정작 장덕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박 사장은 그런 친구들을 입맛만 다시며 바라만 보았다.

장덕호와 조충대는 서로 시시콜콜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이지만 박 사장은 역전에 나와서 알게 된 사람이니 그의 가정사나 사업 얘기는 털어 놓는 것만 알고 나머지는 잘 몰랐다. 단지 홀아비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또 박 사장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말이 없는 사내로 잘 웃지도 않았다. 그가 건설업을 했던 사람으로 제법 착실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이란 정도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하여간 조충대의 비아냥거림 소리 밑바닥에는 장덕호의 쑥쟁이 기질을 힐책하는 뜻이 깔려 있었다. 장덕호는 사진관을 하던 젊은 시절 춤을 배웠다. 사진관 근처에 마침 춤 선생이 있어 지루박이니 트로트, 브루스니 하는 양춤을 큰 돈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었다. 사실 서양 춤이란 게 남녀칠세부동석을 부르짖는 동방예의지국에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친구도 친척도 아닌 처음 보는 남남이 손을 맞잡고 허리에다 팔을 두르고 주물럭거리면서 어쩌다 가슴도 배도 부딪쳐 가면서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밀고 당기며 슬로우슬로우 퀵퀵 하면서 음악인가 박자인가에 맞춰 돌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가장 친밀한, 아니 은밀한 사이로 발전하고 마는 것이 그 시대의 어떤 풍속도이기도 했다.

장덕호는 키가 자그마하고 몸집이 별로 크지 않았지만 태권도로 다진 체구라 한 번 보기만 해도 당차고 건강한 사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여자들이 그에게 안겨 트로트라도 한 번 추고 나면 그만 그의 몸 전체가 단단한 근육질임을 알 수 있었고 홀딱 반해서 허벅지부터 벌리고 달려들었다. ‘이 방아 저 방아 해도 장 사장의 가죽 방아가 제일이다.’ 하면서. 물론 장덕호가 하는 얘기이니 반 쯤만 믿어도 된다.

“댄스홀에 나오는 여자들이 10에 6, 7은 바람난 여자들이야. 그 년들이 말짱한 거 아니야.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반찬꺼리를 사러 나왔네, 내숭을 떨지만 실은 조충대 네 놈처럼 허약하고 내실은 하나도 없는 시시한 제 남편 말고 나 같이 튼튼하고 완력 좋고 실력 좋고 거기다 물건 좋은 사내를 만날까 하고 나왔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여자를 만나면 먼저 나무꾼 쑥 얘기를 했던 거야. 쑥 넣으면 어떻고 쑥 빼면 어떠냐? 내 말뜻을 단번에 알아듣고 상대 반응이 ‘쑥 넣어야 좋죠.’ 하면 당연지사, 그러면 작업은 끝나는 거야.”

“야야, 그만 둬라. 이제 또 들었으니 그 얘긴 골백번도 넘는다. 박 사장, 이런 놈이요. 장덕호란 사내에게 쑥쟁이란 별호가 그냥 생긴 게 아니요. 여하튼 날 춤 배우게 만들려고 한사 절단하고 날 꼬시는데 난 독야청청 넘어가지 않고 오늘 날까지 버티어 온 사람이요, 자고로 남자 여자가 눈길만 마주쳐도 사고가 나는 법인데 멀쩡한 대낮에 멀쩡한 정신으로, 간혹 술기운도 있었겠지만 어두컴컴한 방에서 부둥켜안고 서로 못 살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사고가 안날 수가 있겠소? 사실 우리 마누라가 저자 바구니를 들고 그런 곳에 출입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거기 드나드는 여자들 정신이 온전한 여자들이 어디 있었겠소? 다아 탈이 난 것들이지.”

“허어! 충대야 말 조심하거라. 내가 아까 그랬지? 10에 6, 7이라고. 나머지 3, 4할은 요조숙녀들이지. 히히히.”

“그 말 또 한 번 이상하네. 거기다 그 웃음은 또 뭐꼬?”

“그, 그거는 그만하고······. 박 사장, 어떻게 생각해요? 내 새장가 가는 거 말이요. 내가 상처한지 3년 하고도 반 년이 후딱 넘어 갔는데 유일한 친구라는 저 사람은 모르는 척 하고 있어요. 더러운 처와 악한 첩이 빈방보다 낫다고 했고, 효자가 불여악처(不如惡妻)요, 착한 며느리도 악처만 못 하다는데 제일 친한 친구가 외면을 하니 이거 어쩌면 좋소?”

장덕호의 말에 박 사장은 희미하게 웃을 뿐 반응이 없었다. 친구보다 더 흥미 없다는 눈치라 그는 더 열이 올라 말했다.

“쑥쟁이 뱃놀이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만 사실 같이 사는 자식 며느리 눈치도 보이고요, 형제, 친척들 간섭이 있잖습니까? 그거 다 외면하기도 뭐하고······. 야, 충대야, 이렇게 진심으로 인생 상담을 하면 좀 들은 척이라도 해라. 장 여사가 나와 종씨라고 친한데, 얼마 전부터 날 붙들고 여자를 소개시켜 줄라는데 어쩌면 좋단 말이고? 이번 여자는 60도 안되었다 카더라. 고등학교를 댕긴 교양 있는 최 여사란 여자야. 자식이 아들 딸 둘이 있는데 다 성혼을 시켰는데 둘 다 서울 가버리고 혼자 덩그렇게 큰 집에서 산다꼬 하는 기라. 어짜꼬?”

“너 지난번에 그 여자 한 번 만나 보았다고 했잖아?”

“어어, 그때는 등산 갔다가 벼락치기로 만난 거지.”

나이 들고 거기다 디지털 카메라가 판을 치는 바람에 사진관은 완전히 개점 휴업상태라 장덕호의 신신사진관도 어느 날 문을 닫고 말았다. 어쩌다 급하게 쓸 증명사진 찍으러 오는 손님으로는 점포 임대료도 안 나올 판이었다. 아니 하루 종일 사진관을 지키고 있어도 개미 새끼 한 마리 구경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문 닫아야 될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요즘 사양 산업에 사진관 말고 또 하나가 있다면 목욕탕하고 이발관이다. 이발관은 늙은이나 이용할 뿐 대부분 젊은이들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집집마다 화장실에 샤워가 있으니 목욕탕 갈 일도 없어졌다. 예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이면 한 집 건너 이발관이던 것이 이제는 거의 문을 닫고 말았다. 신시가지에는 아예 목욕탕 간판 찾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처럼 사진관도 하나 둘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할 일이 없어진 장덕호는 앞산 뒷산 등산을 하다가 만 원짜리 한 장만 들고 마산역으로 나가기만 하면 전국의 이름난 산으로 떠나는 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타기만 하면 멋진 등산을 할 수 있고 덤으로 술도 마실 수 있고 댄스홀에 나오는 닳고 닳은 여편네들이 아니라 가슴도 다리도 건강한 여편네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된 것이었다. 그가 권해서 조충대도 몇 번 등산을 따라 가기도 했지만 충대는 워낙 허약 체질이라 높은 산 등산을 지레 겁을 냈다. 조금만 숨이 차면 심장이 터질까봐 아니면 피가 머리에 올라가지 못해 기절을 할까봐 걱정을 했고, 너무 걸어 다리가 아프다면서 엄살을 피워댔다. 관광버스를 타면 그와 연배가 비슷한 사내들이 많았지만 산악회에 따라 4, 50대 중년들이 대부분에다 여자들이 많이 끼이게 마련이었다. 오가며 버스 안에서 천방지축 춤을 추고 중구난방 떠드는 여자들 바람에 그는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마산역으로 돌아오면 뒤뚱뒤뚱 오리 궁둥이 살만 찐 여자들이 2차를 가자고 샌님 타입인 조충대를 붙들고 난리를 치는데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자연히 조충대는 뒤로 처지고 장덕호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정상에 오르는데 나이가 이순을 지나 종심(從心)을 바라보니 사실 가파른 산길이 벅차기도 했다. 하지만 사나이 어디 가나 옹솥하고 계집은 있다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여자였다.

“아니, 장 사장님은 아직 한창이네요? 걷는 걸 보면 쉰이 조금 넘은 듯 한데 모자를 벗으면 나이가 엄청 들어 보이네요? 진짜 몇 살이죠? 아직 육십은 안 넘었겠지.”

여자들이, 사내들이 그를 보고 건강체라면서 한 마디씩 거드는데 꼭 대머리가 문제였다. 모자를 쓰고 있으면 50대인데 모자를 벗었다 하면 60대라니 그는 덥거나 말거나 언제나 꾹꾹 모자를 눌러 쓰고 다녔다. 웃통을 벗어 제치면 젊은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근육이 발달하고 태권도로 다진 몸매가 그대로 살아나건만 모자를 벗었다하면 만사휴이,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그렇거나 말거나 한동안 잠잠했던 바람기가 발동해 뱃놀이에 재미를 붙이고 지냈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는.

아내는 암으로 죽었다. 2년을 병고에 시달렸다. 위를 통째 덜어내는 수술을 하고, 위암으로 죽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현대의학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아내를 살릴 재간이 없었다. 허망했다. 아내가 죽고 나서 한동안 댄스고 등산이고 뱃놀이고 다 때려치우고 조충대와 바둑으로 세월을 보냈다. 조충대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지내다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었다. 외모도 키가 크고 야위면서 희멀쑥한데다 항상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다녔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지만 그는 알듯 모를 듯 살았다. 간혹 하도 답답해서 장덕호가 요리해서 처지고 남은 부스러기 여자들 중에서 충대 마음에 들 만한 여편네를 골라 접근을 시켜줘도 그는 관심이 없어했다. 마누라 하나만 해도 자신에게는 벅차다는 것이었다.

 

 

“야, 충대야, 예전부터 이런 말이 있다. 오입 중 제일은 재미있는 거가 첫째가 유부녀, 둘째가 과부, 셋째가 암×, 넷째가 무당, 다섯째가 백정년, 여섯째가 종년, 일곱째가 처녀, 여덟째가 기생, 아홉째가 첩, 열째가 마누라다 하는 말말이다. 넌 평생내 남의 여자 한 번 못 건드려 보았지? 평생 마누라만 끼고 살았으니 진정한 여자 맛은 보지도 못하고 끝난 거야. 그래서 여자를 붙여 주려고 그러는데 왜 콧방귀만 끼는 거야? 정말 흥미가 없니? 아니면 네 그거 고장 나서 말을 안 듣는 거야? 비아그라 있제? 그거 써 봐라. 효험이 있다니까.”

“말마라, 우리 부부 딴방 쓰는지 여러 해 됐다.”

사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판에 장덕호는 아직 여자를 끼고 살아야 될 만큼 성관계에 몰입해 있고 조충대는 마누라를 멀리한지 오래 되었다. 도무지 아내 곁에 가도 반응이 없고 자신도 흥미가 없었으니 나이 들면 다 그런가 보다하고 살았다. 그런데 장덕호의 허튼 소리에 의하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 늙었어도 디딜방아에 겉보리 찧듯 해야 살맛이라는 여자들이 도처에 널렸다고 하니 노년에도 여전히 남녀관계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었다. 홀아비가 된 노인들이 역 광장을 배회하는 여자들과 여인숙에 가는 걸 자주 목격하면서 조충대는 과연 늙은이들의 외로움과 배설문제는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오늘날 심각한 노인문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봐라. 난 솔직히 말하자면 인제 내 기계는 고장이 나서 영 말을 안 듣는다. 또 마누라도 노골적으로 싫다카능 기라.”

“그라문 잘 됐네. 우리 종씨 장 여사 붙이 주께. 같은 일가라꼬 날 보고 오빠네 아재네 해 쌓으면서 친한 척 하는데 그걸 델꼬 노는 거는 사실 나도 끼꾸룽하고 말이다. 니 장여사하고 연애 한 번 해 뵈라. 마누라에게는 영험이 없을란가 모르지만 넘으 여자에게는 고게 담박에 발동을 할 끼다.”

“박 사장! 이 친구 말 한 번 잘 하지요? 여전히 뱃놀이가 최대 최고의 관심사요 취미인 걸 단번에 알겠지요?”

그제야 박 사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한 달 열흘은 굶고 살아도 영감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는 여자가 더러 있답니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알아준다꼬 장 사장님이나 나나 동지섣달 기나긴 밤 홀로 보내는 과부 속이야 우리가 알아주어야지요. 홀아비 집 앞은 길이 보얗고 홀어미 집 앞은 큰 길이 난다했으니 난 장 사장님이 새 장가 간다는 거 어느 정도 찬성합니다. 다만·····.”

“그렇다니까! 장 여사나, 최 여사나 모두 돈이 없어 궁색한 것이 아니라 영감이 없어 궁색한 거지. 서른 과부는 넘겨도 마흔 과부는 못 넘긴다고 하더라.”

“쉰이 넘었다면서?”

“어짜든지 청상과부는 살아도 홍상 과부는 못산다고! 알 꺼 다 알고 쓴맛 단맛 다 본 여자들이니 이제 고적한 걸 못 참는 거야. 장 여사가 충대 너에게 하나도 부담을 주지 않을 꺼야. 슬슬 차에 실고 다니며 드라이브도 하고 맛 난 것도 사 주다보면 담 넘어 꽃이 더 예쁘다고 네 늙고 쭈글쭈글한 사모님보다 좋아보이게 돼.”

“야, 이놈아! 그 소릴 우리 집 사람에게 맞대놓고 해 봐라. 당장 널 인종지말자라고 아예 상종도 말라고 엄명을 내릴 거다.”

둘은 옥신각신 쓸데없는 소리로 한참 다투었다. 그러다 얻은 결론은 장 여사가 소개하는 최 여사를 만나보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혼자 가기 싫단다. 조충대는 물론 박 사장까지 함께 가잔다.

“맞아 죽을까봐 그라냐? 늙은 우리가 싱겁게 따라가?”

“친구들이 선을 좀 봐 달라는 거지. 과연 델꼬 살아도 될 여잔지, 아니면 한 재산 뚝 떼 내어 달아날 여잔지. 난 그게 겁이 나. 오다가다 만나 뚝딱 하고 그만 둘 사이가 아니니까 신경이 쓰이네.”

“우리가 관상쟁이가? 나는 덕호 네 풍치는 소리만 너무 들어서 여자를 보기만 하면 다 그렇고 그런 여자로 생각들던데······. 한번 척 보고 어찌 아는고?”

그때 박 사장이 한 마디 했다.

“장 사장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우리 나이에 재혼한다는 거 중대사입니다. 한 번 바람피울 거라면 아무 여자나 좋은데 좀 같이 살자면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장 여사 최 여사 둘이 나오는 아리랑관광호텔 커피숖에 장덕호는 조충대와 박 사장을 보디가드(?)로 거느리고 나갔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앉아 얼마 기다리지 않아 여자 둘이 나타났다. 둘 다 몸이 뚱뚱하지 않고 날씬하면서도 주름살투성이 나이든 여자 특유의 천한 티가 전연 없는 팽팽한 얼굴들이었다. 키가 상큼 큰 여자가 장 여사이고 키 작은 여자가 최 여사라고 소개했다. 조충대가 보기는 장 여사는 인정 있고 상냥한 미소를 지닌 여자 같았고 최 여사는 당돌하고 조금은 매몰차고 강단 있는 여자 같았다.

인사가 끝나고 커피를 한 잔씩 마신 다음에는 주인공만 남겨 놓고 객은 멀찍이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았다. 장 여사가 먼저 선수를 쳤다.

“조 선생님, 우리 오빠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점잖은 샌님이란 거. 그리고 이쪽은 박 사장님이랬죠? 우리 친구 최 여사 잘 봐 주세요. 친구분들이 인상 좋더라고 얘기해 줘야 오빠가 마음을 잡죠.”

“우리야 제 3자들인데 장 사장이 좋다면 그만이지요. 밥 없으면 얻어먹고 숟갈 없으면 손으로 먹고 집 없으면 정자나무 밑에서 자도 부부간에는 정만 있으면 산다고 했으니 늦게라도 둘이 만나 정을 쌓으면 정말 환영이지요.”

조충대의 말에 장 여사는 반색을 하면서,

“최 여사 쟤가 저렇게 야물게 보이고 당돌하게 보이지만 사실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여자예요. 그래서 같이 늙어갈 사람으로 우리 오빠를 콕 내가 찍어 주었지요. 지난번 설악산 등산을 같이 갔어요. 무박 3일이었거든요. 관광버스 속에서 이틀 밤을 잤는데 최 여사가 우리 오빠에게 홀딱 반 했지 뭐예요. 오빠가 노래도 잘하겠다, 춤도 멋지게 추죠, 거기가 저런 몸짱이 어딨어요? 내가 쓸쩍 오빠하고 최 여사하고 같은 자리에 앉게 만들어 주면서 소개를 했죠. 뭐니 뭐니 해도 우리 나이에는 아무리 옷은 새 옷이 좋고 임은 옛 임이 좋다고 하지만 그거 아니거든요.”

“아하! 그렇게 된 거군요. 장 여사님, 가뜩이나 쑥쟁이 뱃놀이 좋아하는 놈에게 저렇게 예쁘장한 여자를 붙여 주었으니 고기는 씹는 맛으로 먹고 그거는 박는 맛이라니 벌써 저 놈이 맛을 들인 게 분명해요.”

“아이고! 점잖은 선생님 입에서 그런 말씀을······.”

“다아, 저 쑥쟁이에게 배워서 그렀습니다.”

“실은 비밀인데요. 둘이 벌써 만나서 모텔에 갔나봐요. 대단하죠? 호호호.”

뭐가 우스운지 여자가 낯도 붉히지 않고 입도 가리지 않고 웃었다. 충대는 여자의 웃는 입을 바라보자니 문득 최 여사가 시시콜콜 모텔에서 있었던 은밀한 것까지 다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장덕호가 자기를 장 여사의 데이트 상대로 소개했음도 분명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만난 남자에게 은근슬쩍 모텔 얘기를 까발릴 리가 없었다. 박 사장이 또 오랜만에 사이에 끼어들며 한 마디 했다.

“장 여사님, 친구 사이라니까 잘 알겠습니다만 최 여사 성격이 어떻습니까? 돈 좋아하지 않습니까? 보통 여자분들은 이럴 때 조건으로 내 명의로 집을 사 도라, 아니면 내 명의 통장에 거금을 넣어주라든지 그러는데······.”

박 사장의 말에 장 여사가 펄쩍뛰었다. 낯이 새파래져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린 진정이란 말예요. 아니 최 여사가 진심이예요. 결혼식도 않을 거구요, 혼인신고도 하지 않을 거예요. 양쪽에 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있으니 호적을 파 옮기는 것은 아이들이 반대이거든요.”

했다. 그런데 평소 조용하던 박 사장이 이번에는 물러날 뜻이 없는지 과감하게 장 여사와 맞서 의견을 말했다.

“그렇지만 사람일이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처음엔 진정이니 사랑이니 하다가 조금 세월이 지나고 보면 내가 왜 늙은이와 살면서 재산 듬뿍 챙기지 않고 무료봉사를 하나? 하고 야심이 생긴단 말입니다. 최 여사라고 그런 맘이 없겠습니까? 지금이야 내숭을 떨면서, 아아, 내숭이란 말은 취소하고······. 여하튼 남자 허리를 휘어잡아 놓고는 한 밑천 단단히 뽑으려 할 거요.”

“오빠 재산이 뭐 있다고 후려내요? 최 여사 재산이 얼만데요? 죽은 영감이 부자였거든요. 그리고 친정도 잘사는 집안이고요. 쟤가 몰고 다니는 차가 외제예요. 뭐가 아쉬워서 뭘 탐내요?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절대는 절에 가면 있는데! 장 여사님, 우리 이제 그런 얘기 그만 합시다. 박 사장도 너무 앞서 나가는 말을 한 것 같소. 장 여사나 최 여사나 다 교양 있고 뼈대 있는 집안의 여사님들인데 설마 막돼먹은 시중의 그런 여자 같겠소?”

조충대가 나서서 흥분하는 박 사장과 장 여사를 반쯤 나무라고 반쯤 화해를 붙이려 애썼지만 여자는 불쾌하다는 낯빛으로 그만 자리에 일어나 나가버렸다. 박 사장은 바람을 일으키며 나가는 여자의 뒷모습만 한참이나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고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조 선생, 사실 내가 그렇게 당했습니다.”

“그렇게 당하다니요? 아, 아니, 그럼······.”

“예, 조 선생 생각 그대로 나도 마누라와 사별하고서 혼자 살기가 막막해서 여자를 만나 살기로 했지요. 식당일을 하는 여자였어요. 애들 집에 가기도 싫고요. 그래서 따로 살았지요. 그런데 혼자 끼니를 해 먹자니 하루 이틀이지 두어 해가 흐르고 나니 그게 싫어서 미치겠습디다. 그래서 아이들과 의논했지요. 이래 가지고는 정말 못살겠다. 외롭다 쓸쓸하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혼자 살아보니까 기본적으로 청소 빨래나 끼니가 큰 문제더라. 아이들도 흔쾌히 찬성했지요. 마침 자주 다니던 단골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가 마음에 들었지요. 나이가 쉰 쯤 됐을까? 촌 여자 같았어요. 몇 번 만나보니까 여자가 순하고 조금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듯도 하고 살아 온 내력을 들어보니 술귀신 폭력 남편을 만나 죽자고 고생을 하다가 헤어진 사람이었지요. 혼자 산지 십 년이 넘었데요.”

“잘 됐네요. 사실 나도 저 친구가 그럴 듯한 여자를 만나서 살았으면 했지요, 아들 내외와 같이 사는데 어디 아들 며느리가 아무리 잘해 준다지만 마누라만 하겠어요? 그리고 속옷 빨래도 그렇고 반찬도 그렇고. 저 친구 얘기 들어보면 자기 입에 맞지 않고 맛이 없어도 맛있는 척 먹는답니다. 그래야 며느리가 또 다른 반찬을 해 올리지요.”

박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옳은 말이라고 긍정했다. 박 사장은 그래서 재혼을 했다. 혼인신고야 안했지만 절에 가서 간단한 예식은 올렸다. 가족들이 모인 앞에서. 그런데 딱 하룻밤 자고 나니까 여자가 그랬다.

“우리 이사 가입시더. 저는 창원이 싫습니더. 혹시 전남편을 만낼까 겁도 나고 또 식당에서 일했으니 그런 손님들과 부딪치는 것도 겁이 납니더.”

여자의 말이 일리가 있다싶어 그는 100평이 넘는 대지가 딸린 수억 짜리 단독주택을 팔아 진해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를 사고 보니 돈이 조금 남았다. 그는 여자가 진심을 다해 남자를 보살펴주려 하고 좋은 반찬에 3시 세 끼 따뜻한 밥을 해먹이려 애쓰는 것에 마음을 푹 놓았다. 여자가 뭐라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거금이 든 통장을 여자 명의로 만들어 손에 쥐어 주었다.

“자, 이거 지니고 있어요. 이거 절대 보상금이나 뭐 그런 게 아니고, 비상금이요. 꼭 필요할 때가 생길 거요, 그럴 때 당신이 마음대로 쓰도록 해요.”

물론 여자는 싫은 기색이 없었다. 1년을 잘 살았다. 순조롭게. 2년이 조금 지나니 폭력을 휘둘렀다는 전 남편이 나타났다. 아이도 둘이나 있다고 했다. 그 사이 아이들과 내왕이 있었든지 제법 많은 돈을 자기도 몰래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었다. 전 남편이 앞으로 절대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테니 같이 살자고 애원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도 엄마를 못 잊어 찾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얘기를 들은 박 사장은 난감했다. 쉽게 결말이 나기 힘든 일이라 좀 시일을 끌며 관망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친목회 친구들과 1박 2일 동해안으로 여행을 다녀왔더니 아뿔싸! 집이 텅 비어 있었다. 이웃 사람들이 그러는데 어제 고향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더란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와서 가재도구를 몽땅 실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닌가? 참 허탈했다.

“허어! 박 사장이 평소 과묵하고 기가 죽어 있어 원래 성정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제 알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구려. 미안하오. 내 진작 못 알아봐서······. 그만 나갑시다. 그 얘기 듣고 술 한 잔 않고 어찌 그냥 넘어가겠소?”

둘은 커피숍을 나와 슈퍼로 직행해 캔 맥주를 샀다. 역 광장 그늘이 있는 잔디밭으로 가서 그것을 마셨다. 땡볕이 광장 복판에 쏟아지고 아이들이 분수 속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웃고 있었다. 그들은 그걸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손자들이 생각나고 동시에 이제는 늙었음을 실감했다.

장덕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보나마나 그 놈의 버릇대로 최 여사를 끌고 모텔에 가서 신나게 뱃놀이를 즐겼을 것이다.

이튿날, 장덕호는 기운차게 역전에 나타났다.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더라. 가재는 작아도 바위를 지고, 여자는 작아도 사내를 태운다더니 고 작은 몸이 어찌나 통통 튀든지! 여자 그거는 첫째 통통해야하고, 둘째 좁아야 하고, 셋째 빠는 맛이 있어야하고, 넷째 속이 따뜻해야하고, 다섯째 물이 많아야 한다는 거 딱 맞는 말이제.”

“야, 이 싱거운 놈아! 제발 그 허튼소리 그만해라. 며느리 사위 다 본 놈이 입만 벌렸다하면 음담패설이니 혹시 며느리 앞에서도 주둥이를 그래 놀려? 양기가 모두 입으로 올라온 것도 아닌 듯한데.”

“여하튼 그렇다는 말이지. 최 여사 엉덩이가 일품이던데? 장가를 세 번 가면 불 끄는 걸 잊어버린다더니 어제는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나중에 보니까 여관방 방문 잠그는 것도 잊었지 뭐야. 허허허.”

“자알 논다. 그래, 합치기로 했어? 최 여사와.”

“도도한 여자와 합치기는 틀렸고, 출퇴근 형식으로 자기 집에서 살제. 아침 일찍 왔다가 저녁 늦게 퇴근하란다. 친구들도 델꼬 오래. 자기 친구들과 터놓고 지내면 된다는구먼, 사실 양가 자식들에게 알리는 것도 좀 쑥스럽고 잘 못하면 서로 재산 탐내는 꼴이 될까 겁도 나고 자연스럽게······. 뭐, 그런 거지 뭐.”

“에이! 싱거워 빠진 놈! 그런 여자는 꽉 붙들어 매 델꼬 살아야 한다꼬 해 놓고서!”

“최 여사를 만만히 보지마. 그 여자 그래도 애교 만점의 교양 있는 여자야. 참, 마른 장작이 화력은 더 세다면서 장 여사가 니 좋단다. 연애 한 번 멋지게 해 봐라. 응?”

박 사장이 옆에 있다가 또 한마디 했다.

“그게 잘 된 겁니다. 장 사장. 새장가? 별로 마음에 안 듭니다. 권하고 싶은 생각 초장부터 없었습니다.”

장덕호가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커피 마실 사람은 다 따라 오시오. 젊은 놈들 말로하면 내가 쏘지요.” 하고 고함쳤다. 오뉴월 소불알처럼 늘어져 있던 사람들이 커피 자판기 앞으로 슬슬 몰려갔다. 여름 햇살이 뜨겁게 광장을 녹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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