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남지읍 수개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수개리 골짜기
9. 수개리(樹介里)
수개리(樹介里)는 남지읍의 북부지역으로 본래 창녕현 남곡면으로 수개촌(樹介村)과 금곡촌(金谷村)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이 1910년대에 합하여져서 수개리가 되었고 1914년 군 . 면 . 폐치 분합 때 남곡면과 도사면이 합하여지면서 남곡면의 소속이 되었던 것이다.
수개라는 지명의 첫 글자 ‘수’는 높은 산의 옛말 ‘수리, 술(述)’이며, ‘개’는 ‘고개, 재’에서 온 것이니 곧 높은 산등성이 고개마을의 뜻을 가지고 있다. ‘수리’는 「실」「수」「수리」「솔」등으로 변하기도 하였는데 그 뜻은 높은 산, 산악으로 「山, 峰, 岳, 嶺」이다. 이것의 음훈차로 「蘇 · 近 · 述 · 戍 · 酒 · 驚 · 所 ·樹」등도 쓰이고 「嶽 · 車 · 亭」등도 사용되었다. 수(樹) 역시 음차이며 개(介) 또한 음차이니 ‘수리재’, ‘수리고개’ ‘수리개’‘수개’의 등으로 불리어 진 것이 한자화 하면서 뜻이 통하는 좋은 글자로 기사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지형이 산등성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수개라 불린 것으로 보인다.
금곡촌은 수개 마을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쇠실’이라 불리던 것이 금곡으로 기사된 것이다.
수개는 창녕현 남곡면일 때 면장이 있었던 면사무소의 소재지라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아지리에 면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은 아지가 본남곡촌이라 기록되었기 때문이며, 그 후 수개로 옮겨졌다가 또 이곳 남쪽인 고곡리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개 마을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지나가는 길은 예전 창녕고을 원님이 진주감영에 출장갈 때 다니던 한길(大路)이어서 현감의 치적을 기리는 불망비가 서 있기도 한다.
자연 마을로 씨실[琴谷], 납장골[蝶谷], 미실[尾谷], 맥곡 등 여러 곳이 있으나 행정 리는 단일 리이다.
◉ 9-1 수개(樹介)
수개리의 중앙에 높은 산등에 있는 수개 본동으로 이 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에는 쇠실(금곡), 동쪽에는 접곡과 미실이 있다. 총 호수는 84호인데 전에는 100여호가 넘었으며, 수개 본동은 전에는 72호였으나 지금은 61호이다.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영산 신씨, 벽진 이씨, 해주 오씨 등의 세거지로, 왕남재(旺南齋 : 김해 金埈永 所築), 춘우재(春雨齋 : 밀양박씨 봉선소), 동산재(東山齋 : 영산신씨 봉선소) , 천곡재(川谷齋 : 영산신씨 봉선소) 등이 있다.
◎ 응달
수개 본마을 안에 응달쪽에 있는 뜸이라 하여 응달이라 부른다.
◎ 양달
수개 응달 뜸의 북쪽으로 양지쪽 뜸이므로 양달이라 흔히 불린다.
◎ 하담
하단이라고도 하는데 수개 본동의 아래쪽 뜸이다.
수개마을 전경 , 뒤의 산이 고운봉이다
◎ 씨실[琴谷]
수개리 남쪽 마을로 고곡에서 가자면 수개리 입구이다. 쇠가 나오던 곳이라 하여 쇠실이씨실로 불린 것이 쇠 금(金)자를 써 금곡촌(金谷村)으로 『호구총수』에는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씨실의 ‘씨’를 악기로 보아 거문고 금(琴)을 써 금곡(琴谷)이라 기사하였다. 이 지방에서는 농악을 ‘씨를 친다’, 꽹과리를 ‘씨’라 함에 따라 씨실의 ‘씨’를 악기인 꽹과리로 보고 그게 악기이니 그래서 거문고 금(琴)을 빌려온 것이다. 금곡은 쇠실(金谷)의 아화이다.
전에는 12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9호 뿐이다.
◎ 납장골[蝶谷]
수개 본동 동편 골짜기의 마을인데 이 골짜기가 납작한 모양이므로 납장골로 불리었다.
납작한 모양은 나비와 닮았으므로 한자로는 나비 접(蝶)을 써서 접곡으로 쓴다.
접곡이라 씀에 따라 옛날 나비가 날아 와 세 바퀴를 돌면서 명당임을 알려 주어 마을터로 잡게 되었다 하는 설이 부회된다. 마을 동쪽편 고개를 넘으면 장마면 동정리 니방골에 이른다. 11호가 살고 있다.
◎ 미실[尾谷]
미실골은 납장골 북쪽 아무개재와 와우등 사이 골짜기로 마을 동쪽에 수개소류지가 있으며 동쪽으로 동정고개를 넘으면 장마면 동정리에 이른다. 골짜기 길이는 1,200m이다.
깊은 골짜기 끝(꼬리)에 있는 마을인데 꼬리골짝, 끝골이란 뜻으로 미실, 미곡이라 불리었다. 또 산이 보리 이삭처럼 생겼다 하여 맥곡(麥谷)이라 쓰기도 하였다. 그리고 미실을 신곡(申谷)이라 쓰기도 한다. 그러나 ‘미’ 곧 ‘뫼’(山), ‘실’은 골짜기나 마을이니 산골 마을일뿐이고 여러 가지 한자 지명은 모두 아화(雅化)로 보인다.
전에는 5호였으나 지금은 3호가 사는데, 이 안에 미실골 못이 있다.
◆ 사창(社倉)걸
마을 앞 갈마지 위의 거리로 전에 이곳에 세곡 같은 양곡을 저장하였던 사창 창고가 있었으므로 사창걸, 사창껄이라 부른다. 여기서 세곡을 모아 창아지 아까리나루를 통하여 삼랑진으로 수송하였다.
◆ 비석걸
마을 북쪽 길가로 이곳에 민병길(閔丙吉 : 1905~1907년 순종 때 재직) 창녕 현감의 선정비(善政碑)가 있기 때문에 비석걸이라 한다. 이 비가 서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계성에 살던 정씨 문중에서 수개 바로 안산인 갈마지 만댕이에다 묘를 썼는데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송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씨 문중은 진주관찰사의 수청기생을 통하여 힘을 쓰게 되어 주민들의 송사는 허사가 되었다. 주민들이 식량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놋그릇까지 거두어 비용으로 쓰며 송사를 하게 되니 동리 인심이 말이 아니었다.
이것을 알게 된 민 현감이 주민과 정씨 문중 사이에 중재를 하게 되어 주민들의 파산을 막게 하였다 한다.
그래서 그의 공덕을 기려 동민들의 정성으로 비를 세웠다 한다. 그러나 문제의 묘는 지금도 이장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한다.
◆ 갈마지(渴馬地)
수개 마을의 남쪽으로 지금은 들판이 되었지만 예전에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김해 김씨, 밀양 박씨가 1700년대에 살았다고 한다. 최근까지 3, 4호가 살았다.
이곳 지형이 목이 마른 말이 물이 마시는 형국인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이라 한데서 갈마지라 불리었다. 산의 이름으로도 불리고, 또 남쪽의 들판도 갈마지들이라 불린다.
◆ 올창고개
수개리에서 동남쪽 고곡리 두곡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큰갓 만당과 효자암산 사이에 있다. 예전에는 수개 두곡간을 통하는 지름길로 수개 사람들이 흔히 이 고개를 넘어 영산장에 다녔다 한다. 근처 지형이 올챙이처럼 생겼다고 한다. 올챙이가 ‘올창’으로 축약되었다.
◆ 황새골
올창고개 서편 골짜기로 전에 황새가 많이 날아왔다고 한다. 바로 앞의 들이 갈마지들이다.
◆ 뒷종골
뒤쭝골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수개 마을 뒤의 서북쪽 징기실 옆 골짜기로 두어 집이 살고 있다. 서쪽에 고운봉이 있다. 마을 뒤의 가운데 골짜기란 뜻으로 뒤중골[後中谷]이 변한 듯 하다.
◆ 뒷징기실골
수개 마을의 뒤 북쪽 낮은 산등 너머 골짜기로 옛 수개 마을이 있었던 옛터라 한다. 예전에는 징기실이라 불리었는데 마을이 앞으로 오고 난 다음부터 ‘뒤’와 ‘골’이 붙었다. 뒷칭기실이라 불리기도 한다. 칭기는 층계의 이곳 토박이말로 층계 모양의 바위나 지형에서 온 듯 하다. 1700년대에 김씨, 박씨가 이곳에 살기 시작하였다 한다.
◆ 진주고개
고곡리 북실에서 북쪽으로 수개리 금곡과 통하는 고개이다.
◆ 고운봉(高雲峰)
노운봉, 노은봉이라고도 하는데 수개리의 서편에 솟은 산으로 산이 높아 구름이 걸려 있다 하여 고운봉이라 한다. 속칭 ‘높은배기’라 하는데 높이는 240.7m이다. 순수 우리말 산이름이 높은배기이니 노운봉이나 노은봉은 ‘높은배기’의 음차로 기사된 것이며, 고운봉은 훈차이다.
◆ 깃대망강
고운봉 북쪽 봉우리로 총독부 시절 토지 측량을 하면서 깃대를 꽂았던 곳이라 하여 깃대망강이라 한다. 지금도 이곳에 측량 깃점인 표석이 있다.
◆ 반월등(半月嶝)
수개마을 앞산읋 강마지와 같은 줄기이다. 산이 둥글어 보기가 좋으면 달과 같이 생겼다 하는데 둥근 산봉우리는 그 절반이 땅과 접하고 있으므로 보름달이 아니고 언제나 반달밖에 되지 않으므로 반월등이라 불린다. 높이는 100m이다.
◆ 웃고개와 아래고개
수개 반월등 서편에서 남쪽 고곡으로 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 아래쪽에 아래고개가 있는데 모두 고곡으로 가는 고갯길이다.
◆ 필밭고개
수개 북쪽 고운봉과 깃대망강 사이에 있는 고개로 나무꾼이 이용했던 길이며 시남리와 용수골과 통하는 산길과 만난다. 이 고개 아래에 지름텅이 있다. 지금은 인적이 사라져 버렸다. 필밭은 화전밍이 개간한 밭을 이곳 지방에선 팔밭이라 부르는데 이것의 와전으로 보인다.
◆** 지름텅
고운봉 아래 산등성이로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왜군과 싸우면서 갈대 접시에 기름을 부어 불을 켜고 싸웠다 한다. 아마 이곳에 기름이 나지 않았나 싶다.
◆ 누부실[臥牛嶝]
미곡 뒷산으로 청단 마을 사이에 있는 산으로 큰갓실산에서 서향으로 뻗어 나온 산등으로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누부실, 와우등이라 한다. 산의 높이는 145m이다.
◆ 담배골
와우등 아래로 미곡 입구의 골짜기이다. 전에 담배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 동정고개
수개리 미실 마을에서 동쪽 장마면 동정리 와양곡과 웃싹실로 가는 고개이다.
◆ 아무개재
동정고개 남쪽 봉우리로 아무개[某氏] 재[山, 또는 嶺]라 불린다.
◆ 꼬티내
아무개재 서편 아래쪽 산으로 봄이면 참꽃이 아주 많이 피는 산이라서 꽃고개란 뜻인데 꽃이란 우리말과 고개 치(峙)가 조합된 지명으로 꽃티[花峙]라 불린 것이다. 산 아래 골짜기를 고티내골이라 하는데 씨실에서 접곡 동편을 지나 미실로 가는 고개 길에 있다.
띄띄난골이라 하기도 한다. 띄띄는 참꽃의 또 다른 토박이말로 보인다.
◆ 니방골고개
수개리 접곡 아무개재에서 동쪽으로 장마면 동정리 니방골로 가는 고개이다. 아무개재 남쪽에 있다. 니방의 ‘니’는 숫자 ‘넷’으로 이 지방에서는 ‘너이’ ‘니’로 발음되니 4방위, [四方]골을 뜻한다.
◆ 큰갓 만당
니방골 고개 남쪽 봉우리로 산이 크므로 큰갓 만당, 큰갓 만댕이라 부른다. 남지읍, 유어면, 장마면 등 삼 개 면의 경계가 되는 북쪽 봉우리를 큰갓실산이라 부르니 이 봉우리는 그 능선의 남쪽이라 큰갓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산줄기 정남향에 두곡마을이 있는데 6·25 때 이 일대를 크로버잎고지라 불리면서 격전이 치열하였던 산이다.
◆ 개오지들
수개와 고곡 사이에 있는 들로 늪과 저습지여서 낮은 개[浦], 오미란 뜻으로 개오지, 개호지들, 개우들로 변화되었다.
◆ 수개들
수개 마을 주변의 들이라 하여 통칭 수개들이라 한다.
* 다음은 남지읍 칠현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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