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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지명사/남지읍

지명유래 / 남지읍 대곡리

by 남전 南田 2012. 5. 13.

 

 

◈▣ 경남 창녕군 남지읍 대곡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대곡늪과 한실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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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곡리(大谷里)

본래 창녕군 남곡면의 대곡촌이었던 대곡리(大谷里)는 ‘한실’이라 불리었던 큰 골짜기안의 마을이다. 대곡리는 남지읍의 서북부 지역으로 남쪽은 낙동강에 닿아 있으나 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로 강에서 골짜기 안까지는 2km가 되어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골짜기이다. 서편으로는 월하리가 있고 동편으로는 산간지로 고곡리 북실과의 사이에 인가가 없는 산지만이 있다.

낙동강 남쪽의 들은 모래땅으로 땅콩과 왜밀(호맥) 등을 예전부터 재배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소채재배가 주류를 이룬다.

 

 

대곡 마을 앞에는 큰 늪이 있어 여름이면 연꽃이 많이 피며, 이 늪의 서쪽 들을 고을터, 남일 장터라 부르는데 예전에 큰 장이 이곳에 섰다고 전해 오고 있다. 아마 낙동강이 지금의 흐름과는 달리 북서쪽에서 월상 마을 산기슭에 바짝 붙어 하담 서편으로 흘렀을 것이며, 그때 강 상·하류를 다니던 배들이 이곳에 닻을 내리는 선창이 있었을 것이고, 각종 화물을 사고파는 장터가 있었기 때문에 남일장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이다.

1999년 지방도로가 확장되고 박진나루터에 의령으로 가는 박진교가 가설되어 교통이 아주 편리해 졌다.

행정 리는 단일 리로 대곡 1개 리이다.

 

대곡 마을 전경

 

 

 

◉ 13-1 대곡(大谷)

 

남북으로 길게 생긴 장방형의 길고 큰 골짜기이므로 한실이라 불리었는데 법정, 행정 리 명칭으로는 대곡으로 사용되었다. 자연마을로 한실과 하담 삼거리 등이 있다.

 

◎ 한실[大谷]

대곡리의 북부 골짜기 안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임진란 때 사람들이 피난을 한 곳이기도 하다. 한실의 「한」은 명사위에 붙어 「큼」을 나타내며, 「실」은 골[谷]의 고훈(古訓)으로 「谷 . 室 . 士」등으로 차자(借字)되어 지명에 쓰였다. 대곡으로 기사(記寫)되었으니 한실은 큰골, 큰 마을이란 뜻이다.

 

◎ 늪가[荷潭]

한실 마을 남쪽 입구에 대곡늪이 있는데 이 늪의 서편 옆에 있는 마을이라 늪가라 부른다. 한자로는 하담(荷潭)으로 쓰는데 「荷」는 연꽃 하, 「潭」은 물 맑을 담이니 바로 연꽃이 피어나는 물 맑은 연지(蓮池)를 뜻하니 늪가의 아화이다.

마을 남쪽 편에 1008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하담재(荷潭齋 : 成昌遇 묘각)가 있다.

 

◎ 삼거리

대곡 마을로 가는 입구로 도로와 지방도가 만나는 삼거리 길거리로 행인들이 쉴 수 있는 주막이 있었는데 차츰 인가가 늘어 몇 집 들어선 뜸이 되었다. 하담과 대곡늪의 남쪽이다.

 

◆ 남일장(南日場) 터

하담 서쪽 편에 있는 터로 예전에 낙동강 나루가 있고 장이 섰던 곳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5일장이란 형태의 재래시장이 서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부터였으니 이곳에 장이 섰던 것은 아마 신라 때가 아니었는가 추측한다.

신라 때 박지곡진(朴只谷津)이 있어 경주에서 서쪽으로 진주 등 경상도의 서부나 백제로 가는 교통로이었으며, 강을 통한 물자의 수송도 용이하였으므로 이곳에 장이 섰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 장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구전될 뿐이다.

 

◆ 고을터

남일장이 섰던 터 일대에는 큰 고을이 있었다고 구전되고 있어 낙동강의 나루터로 박지곡이라 불리었던 고지명(古地名)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담 동편 들판이 넓으니 산자락과 강 사이에 마을이 있어 경주 - 창녕 - 의령 - 진주를 이었을 것이나 신라가 망한 후에 도읍이 개성으로 가면서 경주로 통하는 길이 필요 없게 됨에 따라 이곳도 쇠퇴하였을 것이다.

또 박지곡진 나루터가 이곳에 있었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옛날 강의 흐름이 지금과는 달리 강폭이 훨씬 넓었을 것이며, 또 강의 흐름도 대곡리 쪽 하담의 산 옆으로 붙어 흘렀을 것이므로 강을 건너는 나루터도 지금의 월하 박진 나루터 보다는 산 옆인 이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대문다리껄[大門橋]

하담 남쪽 지방도 상에 있는 월하리로 가는 교량으로 일제시대 이 다리를 월하교라 하였다. 대문다리가 늪가에 있어 속칭 늪가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이 옆에 인가가 몇 집 있어 이곳을 대믄다리껄이라 한다.

 

◆ 범골산[虎谷山]

월하리와 경계지점인 대곡 서편의 산으로 높이는 209.9m이다. 대곡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산이기는 하나 서편 골짜기를 범골이라 함에 따라 범골산이라 한다. 6·25때 미군이 고립되는 등 격전이 치열했던 곳이다.

 

◆ 꽃밭등

월하리와 경계로 하담 서편에 있는 산으로 6.25 전쟁 때 격전지였다. 박진지구전투 전적비가 서 있다. 산의 높이는 142m이다.

 

◆ 한실고개[大谷峴]

한실 마을에서 서쪽으로 꽃밭등과 헌서낭댕이 사이의 고개로 월상 마을로 가는 고개이다. 지도에는 대곡고개로 나와 있다.

 

◆ 대춘이고개[大層峴]

한실 동쪽 구진산 북쪽 산등성이에 있는 고개로 바위가 층층 쌓여 있어 대층고개라 불린 것이 대칭이, 대춘이 등으로 변하였다. 고곡 마을 뒤로 통한다. 월하리와 대곡리 등이 침수되어 도로가 막히면 이 고개로 사람들이 다녔다. 지금은 임산 도로가 개설되어 차가 다닌다.

 

◆ 황씨굴(黃氏窟)

임진란 때 황씨가 의병군에 나가면서 그 가족들이 피난하였다 하는 굴이다. 이 굴은 낙동강 건너 의령 땅까지 뚫려 있다고 전해 온다.

 

◆ 굴바우

한실 서쪽 황씨굴 근처에 바위를 굴바우라 부른다. 굴 곁에 있기 때문이다.

 

◆ 백산나루[白山津]

하담 남쪽에서 낙동강을 건너는 잣고개 나루터로 들판 끝에 있는데 인가는 없다. 의령군 지정면 유곡리 백산 마을과 통한다. 지금은 없어졌다.

 

◆ 공동묘지

백산나루 근처 강가 들판에 조성된 대곡마을 공동묘지가 있었다. 이 외에 한실과 늪가동 사이 산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다.

 

대곡 마을 입구에 있는 대곡늪, 보이는 마을이 하담이다

 

◆ 한실늪[大谷湖]

한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삼거리 지방도변 북쪽에 있는 늪으로 한실 골짜기의 물이 모여 강으로 흘러든다. 최근 늪의 북쪽은 개답(開沓)되었으나 아직도 면적이 넓고, 재래종의 연이 자생하여 연꽃이 보기 좋다.

 

◆ 대곡소류지

대곡 마을 뒤 골짜기 안에 있는 소류지이다.

 

◆ 앞들

하담 서남쪽 마을 앞에 있는 들이므로 앞들이라 한다. 이 들판은 사질토(沙質土)여서 배수가 잘 되어 농사가 잘 된다.

 

◆ 대곡제방(大谷堤防)

낙동강 범람 시 홍수 피해를 막는 삼거리 앞에 축조된 제방이다. 동편은 대곡 입구 산에 서편은 하담 끝 산기슭을 잇고 있다.

 

 

 

* 다음은 남지읍 월하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