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11장 파국 <空>이로다(2)
* 불사른 왕의 맹서(盟書)
왕이 임박 앞에 내놓은 신돈과의 맹서는 진작 알고 있었다. 왕은 다시 다짐하듯 말했다.
“이게 뭔지 아시오? 과인이 첨의를 처음 만나 썼던 맹서요.”
― 師求我 我求師 生死以之 無惑人民 佛天證明”
임박은 종이를 펼쳐보았다. 임박은 무표정하게 맹서(盟書)를 읽으며 아무 말이 없었다.
왕은 중얼거렸다.
“들으니 첨의가 부녀자들과 사통하고 첩이 여러 명이고 자식까지 있다 하오. 또 집이 일곱 채나 된다 하오. 과인과의 약속을 어긴 작태가 여러 가지요. 이 맹세문에 그런 죄상을 적시하지도 않았소.”
왕이 신돈을 죽이려 작정하고 임박에게 죄를 이야기할 때 신돈의 음행이나 부정부패를 질책하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반역과 관련한 언질이 없는 걸 보면 왕은 시해 모의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음이 역력하다. 그러므로 반역 모의 실재성이 의심스럽다.
“……”
임박은 왕의 무정함을 논할 수 없었다.
“그 맹세문을 불태워 버려라.”
왕은 내관 신소봉에 맹서를 내던지며 명했다. 맹서는 화로에 들어가 불태워졌다. 왕의 비정함이요 배신이었다.
왕이 맹서를 내던지면서 말한 신돈에 대한 죄상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사소한 개인적이며 도덕적인 문제였다.
수많은 여자와 관계하며 처첩을 거느리고 여색을 즐겼다면 어찌 아이가 하나겠는가? 그 시절 남자가 처첩을 여러 명 거느리는 게 통례였으니 그게 큰 허물은 아니었다.
임박이 알기에 그 두 살짜리 아이는 첨의의 아이가 아니었다. 암자에 있던 반가의 과부가 송강의 집에 오면서 데려온 젖먹이였다. 거리에서 주워다 키운 양자라 하는 소문도 있었다. 아이 어미나 처첩이 누군지 확실하게 밝혀진 바도 없었지만 모두 기현이나 극락암의 철관 스님이 송강의 집 살림을 돕기 위해 보내준 암자에 있던 부녀자들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변호하지 못했다.
또 집이 일곱 채라니! 임금도 뻔히 알 텐데? 그 집이란 게 부모 잃은 고아들과 거리를 떠도는 부녀자를 모아 규휼하기 위해 마련한 구호소로 모두 인근 절 소속의 허름한 암자인데……. 임박은 임금이 너무 시대의 흐름을 읽을 능력도 없고 암울하기만 한 군주란 생각에 기가 막혔다. 최고 집권자가 된 후 모은 신돈의 재산으로 따지자면 깨끗하다 하고 싶었다. 김란이나 기현의 집을 전전하다가 송현에 집을 하나 지었는데 고대광실이 아니라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왕은 김속명과 대관들의 말 그대로 여러 조정 벼슬아치들이 아부하여 토지, 노비, 금은보화, 보기(寶器) 등을 많이 바쳐서 축적해 첨의가 엄청 부유했던 것처럼 주장하는 걸 그대로 믿었던 것일까? 조금은 아니었다. 왕은 이전에 신돈이 녹(祿)을 받지 않고 색(色)을 가까이 하지 않고 전원(田園)을 두지 않아서 신돈을 믿어 존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송강의 집을 드나들면서 왕이 직접 그 사실을 살펴보고 알았을 것이다. 인제 와서 그 맹서를 파기하다니! 임박은 유구무언 고개를 떨구었다.
유배에 그치지 않았다. 김속명은 이부(형부)와 헌부(憲府:감찰사)를 부추겨 강성을, 신귀, 신순 형제 등 가족과 신돈 당파로 지목되는 자들의 모반 치죄를 왕에게 상소하자,
“문하성과 중방(重房)에서는 어째서 이러한 상소를 올리지 않느냐?”
하고 왕은 관원의 죄를 탄핵하여 임금에게 아뢰는 일을 맡아보았던 문하성에 질책하였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문하성과 중방에서도 이부나 헌부와 마찬가지로 벌을 내리라고 상소했다.
“신돈을 참형에 처하고 당파들 일족을 유배 보내고 가산을 몰수하고 형제 자식에게도 죄를 물어야 합니다.”
“대역 죄인의 집을 불사르고 집터는 파서 못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도당과 문하성에서도 신돈 일파를 탄핵하자 왕은 그 상소를 못 이기는 체하면서 자신의 비정함을 감추려 했다.
“법은 천하 만세의 공의(公義)로 내가 사사로이 어쩌지 못할 바이니 상소하는 대로 시행하라.”
왕은 대역 죄인 잔당을 잡아 그리 처결하라고 했다. 시중 이춘부와 밀직 김란이 왕 앞에 나아가 신돈의 처벌에 신중해 줄 것을 주청하였다.
“전하께서 그리 믿고 아꼈던 첨의가 그리 불경스러운 일을 모의하지도 획책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데 첨의를 불러 친히 그 죄의 진위 여부를 따져 물으소서.”
공민왕은 벌꺽 화를 냈다.
“아니! 시중은 그자의 죄상을 듣지 않았소? 중신들과 대간들의 탄핵을 들었을덴테! 감히 과인을 시해하려 하였다니!”
“아직 첨의를 불러 진위를 물은 적이 없으니 하문하시라는…….”
“듣기 싫소!”
왕은 한마디로 이춘부와 김란의 청을 크게 화를 내며 잘라버렸다. 신돈의 세력을 색출하여 조정에서 완전히 퇴출하여야 한다고 김속명과 왕은 작정하고 있었다. 왕은 훗날 살아남은 자들이 신돈의 무고함을 떠들까 시비가 염려되어 논란의 싹을 닥치는 대로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지 헌부의 상소에 신돈의 당여(당파)로 거명되는 자들에게 여지없이 처단하라고 명했다.
유배 보낸 신돈을 당장 죽이고 그의 심복까지 중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조정 중론에 좌시중 이춘부는 크게 낙망하면서 그 화가 자기에게도 미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김란, 홍영통, 김진 등과 함께 왕 앞에 나가 엎드려 빌었다.
“지난날 죄인과 정사를 함께 처리했으며 가까이했으니 그 죄를 벌해 주옵소서.”
왕은 일단 고개를 내저었다.
“그대들은 대역 죄인의 심복이었음에도 사죄하니 용기 있고 정직한 신하라 하겠소. 계속 정무를 보시오.”
그러나 얼마 후 이춘부나 김란은 신돈 당파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결국 참형되었으니 공민왕의 비정한 분노와 피바람은 계속되었다.
신돈과 함께 개혁가로 크게 활동했던 이인임은 사세 판단이 빨라 왕의 심복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라 진작 친정을 주장하여 신돈에게서 떠났었다. 또 김속명과 함께 이인의 투서에 긍정하는 척했으므로 신돈의 심복이라는 혐의를 벗어나 이춘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다.
<창녕신문> 2024. 2. 14 연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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