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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소설

황혼(黃昏)

by 남전 南田 2008. 7. 27.
LONG

또또회는 고향 아닌 타향 땅 자그마한 도시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열 댓 명이 모인 모임이다. 또래 또래들이 모였다고 이름을 또또회라 불렀다. 십여 년 전 첫 모임을 가졌을 때는 스무 여명이었는데 그 사이 모주꾼 두 명중 하나는 심장마비로 하나는 뇌출혈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하나는 농사를 짓는다고 귀향하고 둘은 매월 얼마를 내는 회비마저 감당하기 어려웠던지 슬며시 나오지 않았으며 속 좁은 사내 하나는 고스톱을 치다가 싸움박질로, 또 하나는 노아무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무렵 서로 지지자가 달라 주먹을 날리는 불상사 끝에 탈퇴를 해 버려 지금에 이르렀다.

오늘 또또회의 화제는 단연 병과 죽음이라는 거창한 주제이다.

회원들은 60년 이상 써 먹은 기계가 부속품이고 뭐고 다 낡아 여기저기 고장으로 신음 중이다. 고혈압에 당뇨로 약을 달고 사는 이도 있고 디스크인가 관절염에 시달리는 이도 있고 공연히 불안 불면증에 허덕이거나 고장 난 라디오처럼 귀에서 지~잉 지~잉 소리가 나는 이명(耳鳴)으로 밤잠을 설치는 사내도 있다. 만성위염이니 간이 나쁘니 어쩌느니 해서 날마다 내과에 드나드는 사람도 있고 동맥이 갑자기 좁아지는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은 이도 둘이나 된다. 아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평소 보약을 안 먹고 견디며 건강에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듯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심각한 얘기가 오간다. 늙을수록 여유가 있고 너그러워야 할 텐데 그들은 정반대로 밴댕이처럼 속 좁고 배배꼬여 사사건건 후비고 비난하고 야박한 말만 골라 상대방을 공격한다. 최근 회원 중 하나인 모가(毛哥)가 나이 일흔 살이 되자 뇌에 고름이 가득 차는 병에 걸렸다. 의사 선생님 가라사대 뇌농양(腦膿瘍)이란다. 뇌에 고름 주머니가 3곳이나 생겼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암이 아니란 바람에 모두들 일단 안도했다. 그래서 수술을 받았다. 요새 의술이야 날로 발전하는 시대라 그쯤의 수술이야 누워서 떡먹기 아니겠느냐? 넉넉잡고 2, 3주 지나면 털털 털고 일어나리라 가족들은 생각했다. 여하튼 수술이야 잘 됐는지 못됐는지 모르지만 예상과는 달리 몇 달을 병원 신세를 지고서 퇴원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하반신 마비로 걸을 수가 없었다. 의학적으로 뭐라 하는지 모르지만 병자는 멀쩡한 다리가 걸을 수 없게 된 것은 수술 후유증이라고 굳게 믿고 입에 의사 욕을 달고 산다.

답답한 것은 병상에 누워 꼼작 못하는 병자일 텐데 회원들 중 어떤 이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병자가 친목회의 회비를 열 달이 지나도록 미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침을 튀기며 호령을 한다. 당장 회원 자격을 박탈하라고. 초등학교 동창, 죽마고우의 끈끈하고도 살가운 정은 어디로 간 듯 사라지고 시정잡배조차 용납 못하는 각박한 말들이 오간다.

“만약 모가가 저러다 죽으면 어쩔 거야? 회원이 사망했을 경우 경조사 규정이 어떻지? 아마 지금 적립되어 있는 계금의 n분의 일을 조위금으로 내 줘야 되는 거 아닝가? 회비를 열 달이나 안 내고 있는 사람이 어째서 회원이고? 그건 회원이 아닌 기라. 회칙에 분명히 ‘회비를 석 달 이상 미납하면 자격을 박탈한다,’ 되어 있으니 회장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짤라야 되는 거 아니가?”

회장은 인정사정도 봐 주지 말고 제명 처분하라고 박정하게 말하는 그 회원을 향해 애원쪼로 달래는 소리를 한다.

“송가(宋哥)야, 니도 아파봐라. 사람이 죽는다 산다 하는 정신없는 판에 친목회 회비가 생각나겠나? 사실 우리 모두 지금은 무심한 세월에 밀려 이미 육신은 여기저기 성한데 하나 없고 또 내 아는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씩 불귀의 객으로 사라지고 있고 정신마저 자꾸만 혼미해 가는 황혼 아닌가? 죽을병에 걸려 봐라. 그 마당에 회비 생각나겠나? 조금 기다려 보재이.”

회장의 미적지근한 말에 또 다른 박정(薄情)한 회원인 남가(南哥)가 송가의 말에 맞장구치며 회장을 공격한다.

“회장! 회장은 그렇게 물렁해가지고 우째 이 회를 이끌고 가겠능가? 어떤 모임이든 회칙이 있으면 그 회칙을 준수해 나가야 모임이 일사불란하게 살아 나가는 거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하다간 개판이 되고 말지. 내일이라도 모가가 죽어봐라. 꼼짝없이 우리 회원이니 조위금을 내줘야 하는 거 아잉가 말이다. 미납한 회비가 얼마인데 그걸 무시하고 혜택만 준단 말이고?”

“아따! 아직 사람이 죽지도 않았는데 뭐가 말이 많노? 모가가 지금 당장 일어날 수 없을 끼다만 꼭 회복되어 모임에 나올 것이다. 그러면 미납된 회비를 다 내놓을 것이야. 너무 걱정 말라꼬.”

뇌농양에 걸린 모가와 절친한 오가(吳哥)가 나서서 한마디 한다. 그러자 오가와 친한 채가(蔡哥)도 거들고 나선다.

“씨팔! 누군들 안 아프고 평생을 살 끼가? 너희들 모두 다 늙어서 오늘 내일을 모르는 처지인데 그걸 왜 모르나? 나도 요새 아파서 죽을 판이다. 완전히 속 골병이 들었다.”

“하모. 여기 안 아픈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나는 오후만 되면 체력이 완전히 떨어져서 그로키상태가 된다. 그러니 오후에 뭔 일을 보러 나간다든지 사람 만나는 일은 할 수가 없어요. 그냥 누워서 텔레비를 보면서 쉬어야 해. 먹는 것은 제대로 먹는데 기력은 말이 아니거든.”

채가의 말에 동조하면서 나서는 사람은 좌중에서 가장 말라빠진 강가(康哥)다. 강가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늘 엄살이다. 사실 나이 들수록 몸이 비대해 지는 것이 건강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체중을 늘리기에 골몰한다. 하지만 그의 체중은 늘 55kg을 넘지 못한다. 요즘은 위염인가 역류성 식도염인가로 위장에 탈이 나서 51kg까지 빠졌다. 그러니 노상 감기를 달고 산다. 올 겨울 내내 콧물이 흐르거나 기침을 하거나 목이 아프거나 열이 나거나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집 밖을 나선다 하면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꾹 눌러 썼다. 체열의 7, 80%가 머리로 빠져 나간다는 얘기에 모자를 쓴다. 그리고 어쩌든지 체온을 유지하려고 내복을 입고 그러고도 부족해서 옷을 여러 겹 껴입는 완전 무장을 하고서야 외출을 했다. 그런데 최근 모자 쓰고 마스크 쓴 늙수그레한 놈이 아파트 승강기에 타는 초등학교 여자애를 끌어내리려 지랄을 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방영된 이후 늙어빠진 그가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나서면 꼭 그 정신 빠진 그 놈 같아 보일까 겁이 더럭 났다. 마스크와 모자를 버리자니 코감기 목감기가 겁이 나고 그걸 하고 다니자니 행여 그도 그 정신 빠진 늙은 성범죄자로 아이들에게 비쳐질까봐 주저되고 안달이 났다. 정말 그 놈의 늙은 정신병자 때문에 꼼짝없이 방구석에 틀어 박혀 살아야 된 판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살인자 성범죄자들이 텔레비전에 나왔다하면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간 노인 대접 못 받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강가 옆에 앉은 채가도 더더욱 건강에는 자신이 없다. 사실 채가는 젊을 때부터 술고래로 소문났다. 그렇지만 술 먹은 이튿날 아침이면 각종 보약을 마련해서 먹이는 충성스러운 마누라 덕에 항상 건강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자신의 체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건강 검진에 당뇨 수치가 높다고 해서 술을 끊었다.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술 끊지 않으면 곧 죽음이라고 마누라와 자식들이 강조하는 터이기도 했지만 최근 만취한 다음 날이면 그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면서 절주(節酒)가 아니라 금주(禁酒)하기로 눈물을 머금고 결행했던 것이다. 물론 금연을 하고 있는 회원들도 많아 이제 담배를 피우는 이는 댓 명뿐이다.

회비도 안내고 와병중인 모가와 가장 친한 오가는 더더욱 혼이 난 사람이다. 얼마 전 4박 5일 중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소변을 참았더니 귀국하자마자 갑자기 소변이 나오지를 않았다.

사실 서로들 쉬쉬하고 내색을 않지만 그들 나이쯤 되면 슬슬 고장 나는 기관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중 남에게 말하기가 썩 내키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똥 누는데 지장이 있는 치질이고 하나는 소변을 보는데 지장이 있는 전립선 비대 같은 증세이다. 나이가 쉰을 넘기면 대체로 치질이 생긴다. 오랜 변비가 주원인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항문이 낡았기 때문에 생기는 탈이다. 항문의 주름들이 탄력이 없어 하나 둘 늘어져 제자리로 찾아가지를 못하고 보니 밖으로 삐죽하게 나오거나 터져 피가 나는 것인데 그게 창피하여 숨기는 것 또한 점잖은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팍 내놓고 병원을 찾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한 병이다. 전립선 비대증은 더하다. 오줌 줄기가 약하면 남자들은 으레 양기가 부족해서 그렇겠지 하고 짐작한다. 당장 마누라보기에 면목이 없고 더더욱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다면 생이별해야 될 판이니 이건 기가 찰 일이 되고 만다. 그래서 홍삼을 먹든지 보신탕을 먹든지 기를 쓰고 아닌 척 양기가 철철 넘치고 남는 듯 허세를 부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디다 내놓고 오줌 빨이 예전 같지 않게 뚝뚝 바로 발아래 떨어지거나 바지 앞을 더럽힌다고 고백을 한단 말인가? 비극 중에도 최대 비극이 아니고 뭔가? 다들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고 그 중 몇몇은 치질로 아니면 전립선 비대증으로 속 골병이 들고 있을 것이 뻔 하지만 내색 않는 게 보통이다.

반신불수가 된 모가와 가장 친한 오가가 전립선 비대증으로 여러 해를 고생하는 중이었다. 아닌 척 했지만 사실은 소변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를 여러 번 했다. 비뇨기과에 가야할지 내과에 가야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보신탕이나 생선회를 많이 먹은 날에는 또 커피를 마시고나면 오줌발이 그런대로 시원하게 나오기도 해서 이게 영양이 부족하고 늙어서 그러나보다 반신반의하며 홍삼을 먹으며 비뇨기과 찾기를 주저하거나 미뤘다. 그런데 중국 여행 끝에 탈이 났다. 비행장에 내려 화장실에 가니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오줌을 누고 싶기는 한데 말이다. 그게 끝내 사고를 쳤다. 집에 돌아와서도 소변이 나오지가 않았다. 무식하게 말하자면 오줌통은 터져 나갈 듯 한데 오줌은 한 방울도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용을 쓰다다 쓰다가 기진맥진 탈진상태에 이르러서야 아내에게 SOS를 쳤다.

“아이고! 내 죽겄다. 오줌이 안 나온데이. 어디로 가야겠노?”

119 구급차에 실려 한밤중에 달려간 곳이 종합병원 응급실이었고 가느다란 비닐 줄을 고추 그 작은 구멍에다 쑤셔 넣고서야 한시름 놓을 수가 있었다. 물론 레이저로 밤톨 만하다는 그 속을 박박 긁어내는 수술을 한 다음 퇴원했지만 며칠간 당한 그 고통이야말로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가 그 간악하고 독한 왜놈 순사에게 받았던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찌 그 사실을 회원들에게 시시콜콜 얘기를 한단 말인가? 창피하게. 그래서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 무덤덤하게,

“별 거 아니다. 늬들도 당해봐라. 그러면 알리라.”

하고서 오가는 입을 다물었다.

봉가(奉哥)는 불만이 더더욱 많다. 그는 어느 날 눈앞이 캄캄해져 안과를 찾았다. 의사들의 말이 믿기지 않아 이 의원, 저 종합병원을 돌아다닌 끝에 귀 뒤에 있는 경동맥(頸動脈)이 막혀 시신경이 결딴 날 판이란 진단이 났다. 부랴부랴 서울로 달려가 이름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딸네에서 이십 여일을 요양한 끝에 집으로 돌아 왔다. 너무 급한 일이었던 관계로 또또회 회장, 총무에게 연락을 못했고 모임에 참석 못한 사유를 그 후에야 아내를 통해 얘기하게 했다. 회칙에 따르면 당연히 회원들이 회에서 마련한 위문금을 들고서 병문안을 와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연락을 못한 잘못이 있으니 체면만 보고 있는데 회장 총무는 물론 어떤 회원 하나도 위문금을 줘야 한다는 소리를 않아 무척 섭섭해 하고 있다. 그러니 모가가 와병을 핑계로 회비를 미납하고 있는데도 진작 위문금을 들고 회원들이 병문안했는데 자기에게는 일언반구 위로조차 않으니 그게 몹시 못마땅했다. 그래서 봉가도 한마디 한다.

“나는 뭐 아파 병원에 누웠어도 회비는 꼬박꼬박 냈다 아이가? 성의가 없는 기라. 모가가 정신이 없다면 모가 부인이라도 회비를 챙겨 보내주는 성의를 보여야지. 너희들이 서울까지 병문안 올 수 없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차별대우란 말이다.”

봉가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회장이 손 사레를 치며 회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 총무! 그거 준비한 거 지금 전달해야제. 회원 여러분, 사실 봉가가 서울 가서 대학병원에서 그런 큰 수술을 하고 일주일이 넘게 입원을 했고 딸네 집에서 한 달을 넘게 있으면서 통원 치료를 받았다는 걸 우리가 너무 늦게야 알았습니다. 사실 그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서울까지 올라가서 병문안을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래서 총무보고 위문금을 준비해서 오늘 전달하자고 했는데·······.”

회장은 급하게 총무가 내미는 봉투를 봉가의 손에 쥐어 준다. 엉겁결에 봉투를 받아 쥔 봉가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어, 어! 이거 안 받아도 되는데. 수술을 한지가 언젠데······.”

얼버무리며 뒤통수를 긁는다. 그제야 모두들 박수를 치며 이구동성 “얼마나 고생을 했노?” “진작 알았으면 서울 병원에 갔을 낀데!” 하고들 한 마디씩 위로하는 말들을 한다. 그 바람에 날카로운 대립으로 살벌했던 모가의 제명 문제를 잠시 잊고 봉가의 건강 회복에 대한 축하로 화기애애해 진다.

“늙으면 죽어야 하지만 몸은 늙었는가 모르지만 마음이야 아직 이팔 청춘이제. 구구팔팔이라 안 하더나. 99세까지 팔팔해야 할 낀데. 정말 우리 70대는 험한 인생을 살았지 않아? 어릴 적에는 왜놈 등살에, 해방에, 6·25때는 우리가 국민학교 5학년 이었고, 4·19에······. 가난으로 날마다 죽으로 살았제. 부잣집 아들 채(蔡)가야 호의호식하고 쌀밥 먹고 살았지만도. 그러니 니는 타도 대상 부르조아야. 우리에게는.” 강가의 말에,

“무슨 소리고? 내가 왜 타도 대상이고?”

“넌 지주의 아들이니까. 그 당시 소작농, 영세 농민 그들이 뺄갱이가 아니었더라도 부자들은 모두 타도 대상이었제.”

“뭐라카노! 우리 모두 걸어온 인생 여정이 험난했제. 눈물로 얼룩진 한 많은 세월이 꼭 너 혼자만은 아니지. 찢어지게도 가난한 이 땅에 태어나 초등학교 5,6학년 때 전쟁이 뭔지 평화가 뭔지도 모르고 피란길에 무진 고생하고, 그때 그저 하루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워 무밥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며 지긋지긋하게 허기진 보릿고개 넘긴 것은 우리 모두야.”

그 말에 사람들은 한참동안 어릴 적 못 먹고 못 살았던 시절의 얘기를 다투어 털어 놓는다.

“야야, 봄철이면 삘기 뽑아 먹고 송기 벗겨 먹고, 찔레순 잘라 벗겨 먹었제. 엄마가 쑥 뜯어와 밀가루 묻혀서 털털이해 줘 먹으면 그게 꿀맛이었지.”

“뭐라 뭐라 해도 감자 고구마 땅콩이 최고지.”

“부잣집 아들 아니랄까 감자 고구마네. 그건 우리 집 최고급 식량이었어. 간식꺼리가 아니고! 여름에 개울에서 말밤(마름)을 따다 삶아 먹었는데 요샌 그거 구경하기 힘들더라?”

“우포늪에 가면 지금도 그거 있다 하더라. 나는 낚시질로 붕어, 잉어 잡아먹었지. 갈치 꽁댕이도 구경 못하고요.”

가난했던 그 시절의 먹을거리에 대한 추억은 끝도 없어 사람들이 한마디씩 다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어릴 적 고생담에 다들 눈시울이 젖는다. 지금이야 너 나 할 것 없이 자기 자식들이 그런 고생을 겪지 않고 풍족하게 살아 왔으니 아버지 대의 고생을 알기나 할까? 하고 결국 탄식조가 된다.

“어허! 말짱 헛살았구먼. 이제와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야. 70대 머리 허연 사람들이 이제 해야 할 일이 뭔 줄 아나?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훌쩍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뭐도 가져 갈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빈손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저 세상 가는 순서가 없으니 그저 부담 없는 좋은 친구들 끼리 만나서 산이 부르면 산에 가고 바다가 그리우면 바다에도 가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마음껏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것 있거든 사 먹고 후회 없는 인생 즐겁게 사는 거야.”

“아따! 도사 소리 하네. 채가 이놈아!”

“봉가 니는 죽었다 깨나도 내가 하는 소리 이해가 안 될 거야. 하하하.”

“아아! 채가 얘기를 들으니 나도 한 마디 해야겠네. 너희들 마누라를 하늘같이 떠받들게. 90살 넘게 장수를 하는 어느 영감이 그랬다는 군. ‘당신은 물이요 나는 고기요. 물이 없으면 어찌 고기가 살리요?’ 마누라가 물이란 거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에 일리가 있어. 여러분도 장수 하려거든 마누라 건강부터 챙겨야 돼.”

“허어! 홍(洪)총무도 간혹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쯤 하네. 사실 내가 얼마 전부터 마누라 없이 꼼밥을 먹고 사는데 영 죽을 맛이야.”

“왜? 마누라가 이혼 하제? 아니면 별거 중이야?”

“그게 아니라, 손자 키워주러 서울 아들집에 한 달째 가 있지.”

“아이구! 자식이 뭔지!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늬 마누라도 다 늙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손자 키워주면 뾰족한 수가 뭐 있나? 무슨 덕을 볼끼가? 그 놈들이 커서 할애비 할매께 효도나 하겠어? 말짱 허사야. 그러니 우짜든지 자식들 뒷바라지 하고 쥐꼬리만 한 돈이 남아 있거들랑 자신을 위해 마누라하고 둘이서 아낌없이 다 쓰고 가란 말이다. 저승길에 동행해 줄 사람은 없을 꺼고.”

“맞아! 홍 총무 말을 들으니 정말 건강하게 후회 없이 살다가 죽는 게 행복이야.”

모두들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주문했던 생선회가 들어오자 그걸 먹으며 다시 중구난방 옆 사람과 수군거리며 먹기에 열중하느라 큰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송가는 숭례문에 불을 지른 늙은이 얘기를 했고 강가는 슈퍼 창고에서 여러 수집가지 물건들을 상자 채 훔쳐 제 반지하방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노인 얘기를, 회장은 보험금을 타내려고 늙은 아내를 죽인 영감 얘기를 했다. 오가는 황혼 이혼이 부쩍 늘었다는 뉴스를 보았으니 마누라 건사를 잘들 하라고 당부했다. 또 전에는 사회에서 연장자로 대접을 받으며 존경을 받았던 노인들이 이제는 생활전선에서 밀려나 퇴물 취급을 받고 빈곤한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탄식들을 했다. 공원에서 역전에서 화투 장기를 두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점심때면 무료급식소 앞에서 줄을 서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연민보다는 분통이 터진다고들 떠들었다.

“거기다 그 망할 자식이 마스크 끼고 모자 쓰고 초등학생을 왜 때리고 납치하려고 해. 그런 정신병자 때문에 멀쩡한 노인네들까지 아이들이 슬슬 피하고 여자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단 말이야. 내가 겨우내 감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되는 판에 그게 눈치가 보이고 버스 안이고 은행 단말기 앞에서는 공연히 오해 받을까봐 그걸 벗는다니까.”

말라깽이 강가는 아까 참아 두었던 말을 기어이 꺼내 성추행으로 구속된 그 늙은이를 성토한다. 강가의 말에 토를 달고 나선 것은 역시 아프다면서 열 달이나 회비도 미납하고 출석하지 않는 모가를 제명시키라던 송가였다.

“나도 죽을 판이다. 이놈으 뱃가죽에 붙은 대상포진(帶狀疱疹),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데이. 무통수술이라고 척추에 신경을 끊는 수술을 받았는데도 아픈 것은 여전하고 말이야. 나도 그만 집에 들어 누워야겠다. 모가 그 사람처럼 회비를 낼 필요가 없을 테니.”

면소재지 촌에 사는 송가가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것은 2, 3년 전일이다. 그런데 대상포진을 초기에 치료하지 못하고 촌구석 만병통치 의사의 치료를 받으니 완치가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도시의 피부과를 찾고 종합병원 전문의에게도 가고 해서 여러 달 만에 뱃가죽에 들러붙은 병소(病巢)는 그럭저럭 치료가 되었는데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신경통이 되었는지 시시때때 틈도 없이 쿡쿡 쑤시고 결리며 아픈데 밤이면 전전반측(輾轉反側)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순례를 계속 했으나 그 고통은 여전했다. 그러나 입원 치료 기간이 짧았던지라 또또회 회원들의 병문안을 받지 못했고 위문금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 바람에 모가의 일에 시시콜콜 걸고넘어지는지도 모른다.

송가는 제 병에 대한 엄살을 한참 늘어놓다가 회장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잘 끼고? 회장!”

회장은 그가 뭘 요구하는 알았지만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

“뭐를 우짜란 말이고? 송가 니 아픈 얘기 하다가 갑자기 와?”

“아! 정말 모가 편만 들 끼가? 아까 남가가 말 안했나? 회비를 열 달이나 미납한 모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아무리 초등학교 동창이고 중우 벗고 큰 친구이지만도 친목회는 공적(公的)인 모임이니 만사를 공적으로 처리해야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거라고.”

아까 제명을 하자는 제의는 송가가 먼저 했고 남가는 그저 찬동하는 발언을 했을 뿐인데 이제는 남가가 먼저 제의한 것처럼 말하며 회장의 결단을 촉구한다. 입장이 난처해진 회장은 모가와 절친한 오가를 바라보며 눈짓으로 응원을 청한다. 오가는 눈을 부릅뜨고 말없이 송가를 못마땅하게 째려본다. 그걸 모를 송가가 아니다.

“씨팔! 째려보면 우짤라고?” 버럭 송가가 고함을 친다.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데! 느거 그러쌓으면 내가 먼저 탈퇴할란다. 친구지간에 동창이 좋다는 것이 뭐꼬?"

"누가 친구, 동창이 아니라했나?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다 이 말이지!”

“그래도 수십 년 함께 동거 동락한 친구를 회비 몇 달 안냈다고 제명을 하겠다고 난리라니. 더구나 아파서 반신불수로 기동을 못하는 사람을 향해서······. 그거 비수를 날리는 거야. 몰인정해도 유분수지!”

“아무리 친구이지만 친목회 회칙에 3개월 이상 미납자는 제명한다고 돼 있으니 그대로 시행해야 옳은 일이지.”

티격태격 영감 둘이서 속 좁게 높은 소리로 언쟁을 하기 시작했고 그 떠들썩한 소리에 옆 자리 손님들도 좋은 구경꺼리인가하고 이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회원들은 소주잔 주고받고 맛좋은 회를 들며 한껏 기분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런데 둘의 언쟁이 그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보니 그만 파흥(破興)이 되고 만다. 사람들이 상을 찌푸리고 중구난방 제명이 옳으니 아니라 거니 떠들기 시작한다. 판은 완전히 파장이 되고 즐겁던 술자리는 엉망이 되자 슬슬 탄식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그만해라. 그만해. 친구 간에 뭐가 그리 이해를 못하노? 그리 돈이 아까우면 내가 죽거든 그 놈으 조위금은 안 받으께. 차라리 내 아플 때 병문안 오면서 위문금을 두둑하게 넣어오게.”

강가의 말에 홍 총무가 반색을 하며 나섰다.

“강가 말이 일리가 있네! 죽을병이 들어 입원한 사람이 무슨 정신으로 회비를 챙기겄나? 그러니 앞으로 죽을병으로 입원했다하면 위문금을 푹 많이 주기로 하고 초상 때 주는 부의금은 없애기로 하면 어때? 대신 개인별로 부의를 하고 싶으면 하고 말이야.”

홍총무의 얘기에 회원들이 두 패로 나뉘어 옳니 그러니 다시 시비가 벌어졌다. 할 일없는 사람들의 시비에 시간이야 가든 말든 토론은 꽤 진지한 듯 하면서도 아집에 사로잡힌 말들이 오고갔다. 그러니 결론이 쉽게 나지 않고 말이 오갈수록 내 주장이 옳다고 빡빡 우기는 고성만 더 높아져 친목회의 흥만 깨진다. 회장이 이거 안 되겠다 싶었든지 주먹으로 판을 내리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토론 끝! 토론 끝! 지방 방송은 들어가고 중앙 방송에 집중!”

그 바람에 좌중은 조용해졌다.

“결론은 다음 달에 내자. 나하고 총무하고 의논해보고 조위금을 없애고 위문금을 많이 주든지 아니면 현행대로 하든지······. 그리고 모가 미납회비는 완납이 되도록 나와 총무가 모가 부인에게 연락해 해결하도록 할게. 오늘 모임은 여기서 끝.”

한쪽에서 박수가 나왔다. 그러자 언쟁을 벌이던 송가와 채가도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총무! 화투 준비 됐제? 다들 돈 좀 따 가서 마누라 빤스 사 줘라.”

다음 달에 모이면 또 무슨 얘기로 열을 올릴까? 아마 또 다른 것으로 열을 올리겠지.

화투판이 벌어진다. 또또회 회원들은 화투짝을 모아 쥐면서 무슨 패가 들었나 초장부터 열심이다. 이때껏 떠들었던 것들은 모두 잊어버린 채. 그러니까 늙으면 치매가 찾아와 노망든다더니!

황혼은 비참하다. 비참함을 모르니까 더욱 비참하다.

황혼은 외롭다. 황혼은 슬프다. 넋두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더욱 외롭고 슬프다. *****

  (경남문학 2008 여름호)

ARTICLE

단편소설

 

황혼(黃昏)

 

김 현 우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시끄럽다. 중구난방이다. 통제 불능이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젊다고 자부한다. 그들은 결코 늙은이란 소리를 듣기 거부한다. 노인이란 단어는 그들의 뇌리에 박혀 있지 않다. 버스를 타면 일부러 중년들 사이에 가서 선다. 혹여 학생이나 젊은이들 앞에 섰다가,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하고 자리 양보를 받을 까 지레 겁이 나서다. 일흔 살이 다 되어 가는 판에 겁이 날 것이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었다. 황혼은 곧 노을이다. 그 노을은 찬란하다. 황혼은 슬프기도 하다. 김빠지게 한다. 노트의 끝장처럼 매듭짓기를 강요한다. 더 이상 요구도 요청사항도 있을 수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흔해빠진 넋두리로 가득하다. 그래서 서글프다. 씁쓰레하다. 휘청거리기도 하고 머뭇거리게도 한다. 새로운 사랑도 호화찬란한 꿈도 꾸지 못하게, 정말 아무 짓도 못하게 한다. 깡그리 잊어라 한다. 하지만 전문가 왈 ‘체력만 보자면 지금의 60대는 옛날 40~50대와 비슷한 수준인데 정신적으로는 각박해졌다’고 한다. 그나저나 막무가내로 늙었음을 부정한다. 옹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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