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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름-4

by 남전 南田 2009. 6. 20.

 

돌장승- 어느 산야 길목을 지켰던 네가 왜 남의 정원에 섰는지?

 

단편소설 

이 름 (4)

 

# 동명이인 박동식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뒤지면 같은 이름들이 열이고 스물이고 보인다. 단 글자 두 개로 대한민국 오천만 명의 이름을 작명하다보니 뜻도 좋고 부르기도 좋은 이름이 한정되어 여기도 저기도 같은 이름들이 겹쳐 통용되는 것이다.

박동식이라는 이름도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다. 동녘 동(東), 심을 식(植)이니 참 좋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 선비들은 해가 뜨는 동쪽을 유별나게 경의를 표해 좋은 쪽으로 인식하고 어디든 써 먹었다. 강 이름도 그렇다. 박동식이가 사는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당초는 낙강(洛江)이었는데 강물 줄기가 어디쯤 와서는 동쪽으로 확 틀어 흐르니 강조차 영험하게도 동쪽으로 향하니 그 또한 반가운 일이라면서 낙강을 낙동강으로 부르게 됐다니. 여하튼 한국인이라면 동녘 동자를 선호하니 이름에 <동>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흔했다.

박동식 아버지는 남곡리 마을에서 아들이름을 동식이라 지어 놓고 흐뭇해했다. 누구보다 먼저 <동식>이란 이름을 선점했으니 말이다. 만약 인근 다른 집에서 그 이름을 써 먹었다면 김빠지는 일이 아니고 뭔가?

박동식은 그 좋은 이름값도 못하고 평범하게 살았다. 장사꾼으로 나서서 돈도 벌고 예쁜 아내도 얻고 아들 딸 자식도 2남 1녀 그때 가족계획 구호대로 적당하게 낳아 잘 길렀으니 호의호식 호강하는 팔자까지야 아니지만 땡볕아래서 농사를 짓거나 고추나 오이를 키우느라 겨울이고 여름이고 사시사철 답답한 온실 속에서 두더지처럼 사는 친구들보다야 월등 나았다.

그런데 부산으로 사업차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그 당시는 길을 가다보면 어수룩한 차림의 사내들은 불심검문에 잘 걸리는 때였다. 좀 낡은 점퍼에 후줄근한 골덴바지 차림이라 그랬든지 형사란 작자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그를 불러 세웠다.

“도민증 좀 봅시다.”

박동식은 머쓱해져서 ‘이것들이 사람을 무시하나? 내가 왜 도적놈 같이 생겼나?’ 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신분증을 내밀었다.

“아, 박동식이?”

“와? 박동식이가 이상한교?”

능청을 떨어 형사들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려 보리라 생각을 하며 그런 말을 했는데 되돌아 온 답은 기가 막혔다.

“이상하지! 박동식이가! 팔 내밀어!”

형사는 두말 않고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끌려갔다. 파출소인지 경찰서인지.

“야, 박동식이! 바른 말 해! 어제 초량동에서 두 집이나 털었지?”

“야? 초량동에서요?”

시비가 벌어졌다. 불문곡직 형사들은 그를 절도범으로 몰았다. 박동식은 초량에서 여러 차례 절도에 강도를 한 전과자로 몰렸다. 형사들이 경찰서에서 받은 범인의 인상착의가 비슷하고 거기다 결정적인 증거는 이름이 박동식이었다는 점이었다. 박동식은 사흘을 유치장에 갇혀 고역을 치르고 풀려났다. 진범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 년 후에는 그가 전과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기겁을 했다. 집안 동생이 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했는데 우연히 경찰서에서 신원조회가 왔기에 범죄자 수형명부를 뒤적거리다가 그의 성명 삼자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생년월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채 본적이 남곡리인 박동식이가 대전형무소에서 3년간 콩밥을 먹었다고 적혀 있었다. 동생이 하도 기가 막혀 가만히 기록을 뜯어보고 검토한 결과 동명이인임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동생 얘기에 그도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내가 전과자라꼬? 우째 그런 일이!”.

“해방되고 6·25사변 나고 쑥식이 범벅이던 시절인기라요. 수형기간이 단기 사천이백팔십일년에서 사천이백팔십사년 인가 그렇데요? 그때 형님은 열다섯 살인가 열여섯 살쯤 되었을 꺼로요? 그때는 형님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닝교? 그라고 본적이 창녕군 남곡면 남곡리 뿐이고 지번이고 뭐고 없는 기라요. 남곡 바닥에 박동식이가 하나 둘인교? 아매 수십 명은 될 꺼로요.”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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