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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소설

이름-1

by 남전 南田 2009. 6. 14.

 

담양 메타세콰이아 꿈길

 

단편소설

이름-1

김 현 우

# 변절자

 

그녀의 아버지 변 아무개는 무식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더 무식했다. 그러면서도 절에 가서 빌면 아들을 얻으리라는 믿음은 있었던가?

덕동댁은 딸만 내리 셋을 낳았다. 남편의 멸시 천대야 그렇다 치고 시어머니의 구박은 도를 넘어 거의 고문이나 진배없어 하루 한 시각을 참고 견디기 힘들었다.

“야, 이 년아! 니 ×구멍은 가서나만 나오는 수채구녕이냐? 개골창에서 미꾸라지 기어나오 듯 가서나만 서이를 뽑아 내? 당장 나가거라. 누 집 망칠라꼬 그래 고개를 꼬불치고 섰노? 당장 내 눈에서 안보이구로 나가뿌라!”

시어미의 구박은 날로 극심하여 새카만 보리밥덩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으니 그것은 사람 사는 게 아니라 개돼지만도 못한 팔자라고 절로 한탄이 흘러 나왔다. 그래서 더더욱 동네 뒷산에 있는 월정사를 이웃집 드나들면서 부처님께 절을 골백번 올리며 ‘키 크고 지 애비 닮은 아들내미 하나 점지해 줍시사.’고 빌고 또 빌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집에서 오리 쯤 떨어진 마을 앞 고개가 삼시랑고개라 불리는데 그곳 서낭나무에 공을 들여 아들을 봤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전해져,

“덕동떼기, 삼시랑고개 서낭나무에 비손해 봐. 혹시 영험한 삼시랑 할마씨가 떡뚜꺼비 같은 아들을 점지해 주실란가 아나?”

하고 마을 아낙네들이 하도 권하기도 해서 이러나 저러나 손해 볼 것 없다 싶어 서방과 의논한 다음 주과(酒果) 삼탕을 갖추어 가서 꾸벅꾸벅 절을 하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기도했다.

“삼신할매요,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이소. 지가 무신 잘못이 있고 지가 무신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용열한 여자라 눈감고 용서해 주시고 우짜든지 이 놈으 기막힌 팔자 쭈욱 피이도록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이소.”

믿기지 않는 일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대면서 바로 옆에 있으면 쌍심지를 켜고 부지깽이를 들고 며느리의 등이고 다리고 닥치는 대로 때려 패던 시어미가 아들 점지 받으려고 서낭당이나 절에 가는 것은 막지 않았고 도리어 흐뭇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어미 등살에 못 이겨서라도 사흘들이 풀 방구리 뭐 드나들 듯 절에 다니며 줄곧 아들 얻기를 기도했다.

그 덕분이었든지 적당한 때가 되어 서방과 합방하니 배가 불러 왔다.

“야, 이년아! 이번에 아들 아니면 당장 쫓겨 날 줄 알아라! 니도 낯짝이 있으면 조상님 뵙기가 죄송스럽지 않냐? 삼대 외동으로 내려 왔는데 절손되는 꼴을 나는 못 본데이!”

덕동댁은 속으로 ‘흥! 지도 딸 하나에 아들 겨우 하나 낳고 망단했으면서 무슨 큰 소리고?’ 하고 코웃음 쳤지만 어쨌든 그녀도 마음이 켕기고 찌뿌드드하고 서러움이 복 바쳐 눈물 콧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인자 아들 아이문 나는 마 양잿물 마시고 죽을끼요.”

그녀의 결의에 찬 소리를 들은 서방이라는 작자는 한다는 소리가 또 기가 막혔다.

“동네 껄렁패들이 그라는데 남자보다 여자가 기가 더 쎄면 자꾸 딸만 낳는다 카더라. 우째 그런 기라. 가만히 생각해 보문 우리 밤에 그거 할 때 당신이 색 쓰는 걸 보문 나보다 한 수 위거든.”

그녀는 '이런 빌어묵을 사내 봤나? 자꾸 기를 쓰고 밤새도록 달려들기에 그런 척 장단 맞춰 준 것뿐인데!‘ 하고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아따! 오만 가지 안 걸리는 기 없네. 탱자나무 연 걸리듯 걸리는 갑네. 하다하다 인자는 탈 안 잡는 기 없네. 한 분 따지 볼까예? 당신이 더 기분 좋았능가 내가 그랬능가?”

하고 말았다.

각설하고 온 집안 식구 뿐만 아니라 너른뫼(廣山) 마을 사람 전체가 덕동댁 배만 바라보면 이러니 저러니 시비를 벌렸다. 배가 둥글게 솟았으니 아들이라느니 배가 조금 아래로 처졌으니 딸이라는 둥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고 그러다 웃고 숙덕거리고 서로 점치느라 하루해가 지곤 했다. 모두들 월정사 부처님의 영험을 입었으니 이번에야 말로 분명히 아들이라고 시어미를 만나면 공치사를 했고 서방을 만나면 술 한 잔 사라고 기세를 올렸다.

열 달이 차니 어김없이 애가 나오는데 애를 받은 옆집 할매가 한숨부터 쉬었다.

“아이고, 틀맀데이.”

그 말에 덕동댁도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서방이란 작자가 이번에는 기를 쓰고 비아냥거리는데 시어미 구박은 저리가라였다. 서너 달 지나니 동내 구장이 새로 태어난 딸 출생신고를 면사무소에 해야 한다면서,

“이름을 뭐라고 지었노?” 하고 물었다.

“가서나 이름은 뭐 할라꼬 지어요? 그만 방바닥에 패때기를 칠라카다가 말았는데!”

“그래도 출생신고는 해야지. 다 지 복은 타고 나는 거라니 너무 섭섭케 생각 말고. 후에 그 아가 커서 효녀가 될지 누가 아나?”

“그라문 절자라 카소. 절에 치성 드려서 얻은 자식이니 절자 아이겠소?”

“야, 이 사람아! 절자가 뭐꼬? 절이라문 한자로 사(寺)짠데 이름이 사자가 되는데?”

“우짜든지 나는 절자로 부를 낀게네 구장 아재가 알아서 한자를 써 넣으면 될 꺼로!”

“알았다마! 한자로 절자는 마디 절(絶)이 그중 낫겠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딸 이름은 절자가 되었다. 해방되기 몇 년 전이라 여자애들 이름에 자(子)자가 붙는 경우가 흔했다. 일본말로 ‘후미꼬’니 무슨 꼬, 무슨 꼬 하면서 불리었으니까. 하지만 속내는 아들이 될 걸 요것이 중도에 꺾어 버렸다는 다분히 홧김에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덕동댁은 절자 다음으로 아들만 내리 삼형제를 낳아 시어미 기세를 팍 꺾어버리며 십년 묵은 포원을 풀었다.

절자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4, 5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성까지 붙여 부르면 변절자되니 독립운동을 하다 왜놈에게 붙어먹은 놈이 변절자요, 도둑질한 조선 사람을 왜경에게 일러바치면 변절자요, 왜놈 순사 앞잡이도 변절자란 것이었다. 해방되고 보니 빨갱이질 하다 우익이 되면 변절자요, 높은 사람이나 지주들 눈치 보며 비위맞추고 굽실거리면 변절자라 불리었다. 그거 아주 나쁜 뜻의 단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변절자 동급생들은 아침저녁 만나면,

“야, 변절자! 아직도 경찰서 잡혀 가지 않고 낯짝 뻐쩍 쳐들고 댕기나?”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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