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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소설

이름-2

by 남전 南田 2009. 6. 17.

 

청계천 벽화(정조대왕 능행도)

 

이 름-2

 

# 이또바구

사람 이름이란 게 부르기 쉽고 쓰기 쉽고 잘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게 최고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많은데 이또바구 아버지가 그런 류들 중 하나였다. 이또바구의 형 이름은 두 말 할 것 없이 이바구다. 바구는 경상도 사투리로 바위를 말한다. 한자로는 바위 암(岩)이니 호적에 떠억 올라 있는 이름은 형은 이 암(李岩)이고 동생은 이차암(李且岩)이다. 한자로 따지자면 번듯한 이름임에 틀림없었다. 단지 아이들 이름이라 집에서 부르기 쉬워 바구, 또바구로 불렀고 동네 사람들도 아이들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이바구는 경상도에서 이야기란 말의 사투리니 아이들이 그냥 가만 두지 않고 재미있게 불러댔다.

“이바구 저바구 어느 끼 재미있노?

이바구 저바구 삼삼방구

합바지 홑바지 노랑방구가 최골세.”

흔히 바위를 경상도에서는 ‘바구’라고도 부르지만 ‘방구’라고도 하는데 한편 방귀의 사투리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바위인 바구와 냄새가 지독한 방귀=방구와 섞여서 이바구가 노랑방구라 놀린 것이었다. 노랑방구는 소리 소문 없이 냄새만 지독한 방귀라고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동생 이또바구야 말로 정말 형보다 더한 놀림감이 되었다. 물론 전체 맥락을 놓고 보면 형과 함께였지만 꼭 만만하고 나이가 적은 이또바구가 지나가기만 하면 아이들이 놀렸다.

“누부야 누부라

바구야 박아라

또바구야 또 박아라.”

경상도 말을 아는 사람이라야 그 뜻을 알만한 데······. 여하튼 그런 상욕이 없는 것이었다. 이바구 누나가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다면 기절초풍하고 뒤로 벌렁 나자빠져 버릴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바구나 이또바구에게는 누이가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들 형제에게 누이가 없다는 사실은 별 소용이 없고 그저 재미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엄청나고 충격적인 가사로 전래 동요처럼 불러 재꼈던 것이다. 나중에는 형 이바구가 지나가도 아이들이,

“누부야 누부라 바구야 박아라 또바구야 또 박아라.”

하고 부르다가 주먹이 세고 나이가 많은 이바구에게 된통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뿐 며칠 지나면 골목에서는 그 노래가 봇물 터지 듯 터져 나오곤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내 이암이나 이또암은 온 데 간데없었고 이바구, 이또바구로만 절창되었으니 형제에게는 그게 큰 대못이 되어 심장을 콱콱 찔러댔다.

만약 계속 그 놈의 이바구나 이또바구란 이름을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 달고 다녔다면 큰 한이 되어 그게 맺혀 큰 구렁이가 되어 자꾸 놀리는 놈들을 밤에 찾아가 그 놈의 몸이나 목을 칭칭 감고 복수를 감행했을 지도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중학교에 가니 매 시간마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는데,

“이차암!” 하거나 아니면 “36번”

하고 호명을 하는 바람에 동급생들이 자연히 ‘이암’이라 부르거나 ‘이차암’이라 불러 주었고 꼭 버릇 나쁜 같은 동네 놈들이 ‘바구야.’ 거나 ‘또바구야.’ 불렀다. 그러면 형제 둘이 힘을 합쳐 그런 말을 한 녀석에게 달려들어서 개 패듯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아 이 쌔끼야! 내가 와 또바구고? 이차암이란 좋은 이름이 있는데? 또 그래 부를 끼가?”

애를 묵사발로 만들어 놓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반쯤 성이 풀려 아이를 놓아주곤 했다. 정말 바구나 또바구의 주먹이 차돌맹이나 바위처럼 야물고 힘이 세어 어퍼컷 하나를 날리거나 얼굴에 명중하는 펀치를 먹이면 코피 안 터지는 아이가 없었다.

환갑 진갑을 다 넘기고도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아직 ‘또바구야!’ 하는 늙은 놈이 있다. 그럴 때는 씨익 웃고 말지만 속으로는 ‘요놈! 너 골병 한번 들어볼래?’ 하고 소주든 맥주든 닥치는 대로 퍼 먹여 기어코 친구를 실신상태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수원 화성에서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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