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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10장 왕의 배신과 좌절(4)

by 남전 南田 2024. 1. 8.

10장 왕의 배신과 좌절(4)

 

* 밤중에 날아든 익명서

 

왕과 신돈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음을 감지한 김속명은 태후에게 가서 속삭였다.

태후마마! 이제 중놈을 제거할 기회가 온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기회가 오다니.”

동북면 덕원 출신 이성계 장군을 아시지요? 그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들으니 이제 그 중놈을 끌어내릴 기회가 왔다고 했습니다.”

김속명은 명덕태후의 인척으로 10여 년 전 편조대사를 왕에게 데려가 소개한 김원명의 동생이었다. 형이 오인택(吳仁澤) 등과 함께 신돈을 제거하려 모의를 하다 발각되어 경상도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다. 신돈이 보낸 자가 죽였다 하여 앙앙불락 복수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는 신돈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선부의랑 이인(李韌)을 신돈의 문객으로 가장시켜 드나들게 하고 있었다. 이인은 신돈의 동향을 자주 김속명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왕의 친정 선언이 곧 김속명이나 태후에게는 정권을 휘두르는 자를 제거하기 좋은 기회임을 확신한 것이었다. 그 의견에 동조하는 여럿이란 최영과 경천홍의 세력이나 이성계라 지목할 수 있지만 태후에게는 자세한 내막을 말하지 않았다. )

) 김창현; <신돈과 그의 시대> p295 참고

태후전에서 물러 나온 김속명은 7월 어느 날 선부의랑 이인을 비밀리에 만났다. 김속명은 꼼짝달싹 못 하게 신돈을 함정에 빠뜨리는 계책은 왕을 시해하려 모의했다는 대역죄롤 몰아넣는 것이 최강수라 판단했다. 곧 반역 시해 음모야 말로 왕을 믿게 하는 중대한 계략이라 생각했다. 이인은 김속명의 속셈을 귀담아듣고 곧바로 물러났다.

 

이인이 첨의 신돈이 왕을 시해하려 했다는 익명의 투서를 김속명의 집 마당에 던진 것은 며칠이 지나서였다. 김속명이 왕이 친정을 선언하자 신돈과의 사이가 벌어진 줄 알게 되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돈에 의해 쫓겨난 최영과 경천홍의 무리들과 공모해 신돈을 꼼짝없이 죽일 계략을 논의해 배후에서 이인으로 하여금 투서를 하도록 조종했다고 훗날 공론화되었다.

<고려사> <신돈전>에는 이인이 익명서를 작성하였고 김속명의 집 담 너머 투입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 時求官者, 悉附旽, 選部議郞 李韌亦爲旽門客, 備知兇謀, 陰籍記之. 事迫, 乃匿姓名, 稱爲寒林居士, 爲書, 夜投宰相金續命, 卽微服亡去.

― 신돈에게 빌붙어 문객으로 있던 선부의랑 이인이 그 음모를 자세히 탐지해 몰래 기록해 두었다. 상황이 급히 돌아가자 한림거사라 서명한 익명의 글을 써서 밤에 미복 차림으로 재상 김속명의 집을 찾아가 그 글을 던져 넣고 달아났다.

 

한림거사라 자칭한 자는 제법 상세하게 시해(弑害)하려 하였다고 신돈의 수하들 이름을 거명하며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던진 투서였다. 그리고는 이인은 변장을 하고서 금강산으로 달아났다.

전하! 근일 났습니다. 반역을 고한 이 익명서를 보시옵소서!”

김속명은 촌각을 다투어 입궐해 왕에게 익명서를 올리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반역의 수괴가 역적 신돈이라 적시하였으니 과연 결과가 어쩌 되었을까?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비정하고도 비정상적인 왕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신돈은 전과 다름없이 새벽에 일어나 선방으로 가서 새벽 예불을 벽호 스님과 함께 올렸다.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고 반야심경을 그의 독특한 소리로 독경하면서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왕이나 대신들이 환속하였다고 말했으나 그는 여전히 스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도당에 가려고 나서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대감님. 밖에 충용위 군사들이 와서 집을 에워싸고 출입을 막았습니다.”

기현 대신에 집사를 맡고 있던 유모 장씨 남편의 다급한 소리가 방 밖에서 들렸다. 그 소리에 방문을 여니 마당에는 장씨 남편과 함께 궁궐을 지키는 숙위군 군관이 와있었다.

어쩐 일인가?”

신돈의 물음에 숙위군 군관이 절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저 첨의 대감님을 지키라는 전하의 명을 받자와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자세한 연고는 통 모르고 누구든 출입을 막으며 대감께서도 등청하시지 않아도 된다 하셨습니다.”

뭐야? 나도 나갈 수가 없다고? 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 글쎄. 소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전하께서 불러 편전으로 갔더니 김속명 대감이 계셨는데 전하께서 저에게 그렇게 하명하셨습니다.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오지 않게 지키라 하셨으니 아마 첨의 대감을 보호하시려 하는 듯합니다.”

궁에 큰일이 생겼나 보구나. 충용위 군사들이 와서 지키니 내가 위험에 처하였나?”

아무도 들이지도 내보내지도 말라 했다니 바깥소식이 궁금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밖에 강 판사와 기현 어르신과 이춘부 대감의 하인 등이 와 있습니다.”

동생 강 판사를 불러들이면 무슨 일인가 알 수 있을 텐데? 어제 모니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가 광명사에 가서 공양을 하며 불사를 드리지 않았느냐? 그런데 왕비의 능인 정릉과 광암사에 갈 때는 이인임 대감과 염흥방도 함께 갔지 않았느냐?”

왕은 승선(承宣 : 비서감) 권중화(權仲和) 편에 모니노 생일을 위한 불사에 쓸 향과 의복을 보냈고, 또 정릉에 간다는 말을 들었는지 이인임과 염흥방과 동행하도록 하였으니 어제는 별일이 없었다고 생각하였다.

전하께서 승선 권중화 대감을 보내 향과 의복을 하사해 모니노 왕자님의 생일을 축하하셨지요.”

어제까지 아무 일 없었다. 모니노 생일 예불을 드리러 광명사에 갔다가 왕비의 정릉에 들린다고 하니 근위병까지 딸려서 이인임, 염흥방을 보냈었다. 그 둘은 변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소식도 연통도 없었다.

 

* <창녕신문> 2023년 12월 29일 연재